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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여름을 내내 달궜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후임으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을 지명했습니다.

청와대는 "법무부 장관에 내정된 추미애 의원은 소외계층의 권익보호를 위해 법조인이 되었고 국민 중심의 판결이라는 철학을 지켜온 소신 강한 판사로 평가받았습니다.

정계 입문 후에는 헌정 사상 최초의 지역구 5선 여성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뛰어난 정치력을 발휘해왔습니다.

판사, 국회의원으로서 쌓아온 법률적 전문성과 정치력, 그리고 그간 추미애 내정자가 보여준 강한 소신과 개혁성은 국민들이 희망하는 사법개혁을 완수하고 공정과 정의의 법치국가 확립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방송에서 "추미애 의원이 법무부장관에 적합하다는 의견을 이미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던 추미애 전 대표가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추미애 의원의 경우 상대적으로 친문 색채가 옅어 '탕평 인선' 기조에 맞기도 하며, 청문회 낙마 가능성이 적은 현역 의원이라는 점도 강점으로 꼽힙니다.

추미애 의원 측은 "문재인 정부에서 언제, 어떤 카드로든 쓰일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는 늘 하고 있다."면서도, 장관직 제의 여부에는 확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추미애 의원의 프로필과 정치 인생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맨 왼쪽이 추미애 의원

 

고교시절, 맨 오른쪽이 추미애 의원

출생: 1958년 10월 23일 (61세)
추미애 고향: 대구

추미애 가족관계: 배우자 서성환, 자녀 1남 2녀
종교: 불교

큰 딸 서재현씨의 결혼식에서
추미애 대표 부부와 2녀 1남의 자녀들

추미애 학력
경북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법학과
연세대학교 경제학 석사

추미애 의원 사법시험 수험표


추미애 지역구: 서울 광진구 을 (1996년, 2000년, 2008년, 2012년, 2016년 총 5선-헌정사상 최초)

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춘천지방법원 판사
광주고등법원 판사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 방문교수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판사시절 추미애 의원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1958년, 대구에서 2남 2녀 중 셋째(차녀)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2살 때 부터 외갓집에서 자라서 외할머니가 어머니인 줄 알고 자랐다고 하네요. 부모님은 세탁소를 운영하셨는데, 어느 날 세탁소에 도둑이 들어 손님들의 옷값을 전부 물어주느라 빈털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남편 서성환 변호사와 함께

고등학교 졸업 후 "후회없는 삶을 살겠다"며 한양대 법대에 진학하였으며, 1982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남편은 한양대 법대 동기이지만 남편의 나이가 3살 많은 전북 정읍 출신의 서성환 변호사입니다. 영남 집안에서 호남 사위를 보는 일은 당시만 해도 흔치 않은 일이었죠. 게다가 서 변호사는 고등학생 때 당한 교통사고로 인해 다리에 장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도 결국 서성환이라는 사람의 진솔함에 결혼을 허락하셨다고 합니다.

남편 서성환 변호사와 함께


추미애 대표는 10년 간 판사로 재직한 뒤 "법의 양심을 심어 보겠다"며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1995년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추미애 의원 판사시절 일화
정치의 길로 이끈 김대중 대통령과


TK(대구경북)출신이 호남을 대표하는 DJ의 유세단장이 됐다는 사실은 당시에 꽤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은 추 의원에게 "호남 사람인 제가 대구 며느리를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격려했습니다.

추다르크와 잔다르크 유세단의 유래


잔다르크와 합성어인 '추다르크'라는 별명은 당시 대구지역에서 유세를 하면서 얻게된 것입니다. 이후 추미애 의원은 지역구 의원으로서 국회의원으로서 다방면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2000년 당시 추미애 의원

2001년, 추미애 의원은 과거 조선일보와 이회창 대표에 대한 약간 격한 발언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는데요, 저 기사 제목만 봐도 속이 시원해지네요.(무려 조선일보 1면)

아래 내용은 당시 상황이 드러난 오마이뉴스 기사입니다.

추 의원은 기자들에게 "(지금은) 취재를 하려고 하지 말고, 현 시국에 대해 기자들과 공통의 인식을 공유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기자들과의 술자리에 참석한 이유를 말했다. 추 의원은 그 자리에서 98년 대구 달성에서의 엄삼탁 후보에 대해 정동영 최고위원과 자기가 지원유세를 하며 느꼈던 비애를 눈물을 흘려가며 이야기했다. 또 정 최고위원이 "추 의원이 한나라당에 있었으면 우리가 얼마나 무서웠겠느냐"고 말하자 추 의원이 "내가 왜 한나라당에 가? 한나라당에 가느니, 정치를 안 해"라며 탁자를 쳤고, 이때 한나라당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면서 "이회창이 이 놈"이라는 발언을 했다.

출처: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047095

삼성 회장 지시사항(2003년)


또한 삼성의 '회장(이건희) 지시사항'이라는 문건에도 추미애 의원은 돈 안받는 사람(추미애)으로 기술되어 있습니다.


2002년에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적극적으로 도와서 대선에 임했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국민참여경선을 통해 대선 후보로 확정됐음에도 후보 교체를 통한 '후보 단일화'를 주장하는 세력들(일명 후단협)이 창궐할 때도 추미애 후보는 당시 노 후보를 지켰습니다.

2002년 대선 유세 당시

노무현 당시 후보 지원에 소극적인 민주당을 대신할 조직이 필요했기에 민주당과 별도 조직으로 '국민참여운동본부'를 만들었습니다.

2002년 대선 민주당 중앙선대위 현판식(하지만 후단협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음)
노무현 후보 지원에 소극적이던 민주당을 대신해서 '국민참여 운동본부'를 설립

추미애 의원이 공동본부장을 맡았고, 돼지 저금통 모금운동을 통해 국민들의 참여로 대선비용을 마련하자고 하였습니다. 이에 손에 쥘 수 있는 노랗고 빨간 작은 돼지저금통 20만 개를 만들어 '희망돼지'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돼지엄마 시절을 회상하던 추미애 의원

 

희망돼지와 함께
민주당 당사를 가득 채운 희망돼지(저도 이때 돼지를 몇 마리 보냈었지요 ㅎㅎㅎㅎ)

당시 `희망돼지 운동' 모금액은 신용카드, 휴대폰, ARS, 계좌후원, 희망돼지저금통, 희망티켓 등 6가지 형태로 총 72억7천800만원의 국민후원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02년 노풍 대폭발 전야제
2002년 민주당 여성의원들과(맨 왼쪽은 문재인 대통령)
2002년 12월 17일 강남역 유세(추미애 의원, 노무현 대통령, 임종석 전 의원)

추미애 의원은 탄핵 역풍이 불었던 2004년 제17대 총선만 제외, 여성 정치인으로 헌정 사상 최초로 지역구 5선 여성 의원이라는 대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에 큰 기여를 했던 추 대표는 정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혹독한 시련을 맞게 됩니다.

탄핵 가결 이후 신문을 보는 추미애 의원

노무현 전 대통령이 DJ정권 시절에 했던 대북송금에 대한 특검을 수용하자, 이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분당 사태로까지 이어졌고,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지 발언을 한 것입니다.

탄핵 가결후 국회에서 국민들에게 사죄하는 열린우리당(당시 여당) 의원들
탄핵 표결 당시 울부짖는 유시민 의원

그리고 추미애 대표는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으로서 탄핵에 찬성하게 됩니다.(당시 여당은 열린우리당)

애초에 추 대표는 탄핵을 반대했으나, 결국은 당의 입장에 따르게 되는 과오를 저지르게 됩니다. 본인 역시도 당시 선택에 대해 "분명 잘못한 것이고 제 정치 인생 중에 가장 큰 실수고 과오"라고 후회한 바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대해 반성하는 추미애 의원

하지만 탄핵으로 인한 역풍은 거셌습니다. 추 대표는 노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삼보일배' 등으로 여론을 돌리려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삼보일배로 약해진 추미애 의원

결국 추 대표가 있던 새천년민주당은 9석을 얻는데 그쳐 총선에서 참패했고,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과반 의석을 확보했습니다.

2004년 총선 출구조사 결과 열린우리당 압승


추미애 의원도 당시 낙선하여 야인으로 지냈는데요, "그 당시에 삼보일배로 국민들에게 사죄도 드리고, 정치와 절연한 채 멀리 떠나 있을 때 (노무현) 대통령님은 세 번씩이나 사람을 보내서 장관직 제의를 했다. 꼭 무릎이 아프지 않냐, 언제 돌아올거냐며 안부를 물어주셨다. 서로를 향한 분노와 분열의 상처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저는 온 몸을 바쳐 통합으로 갚아야 한다는 강한 책무를 느낀다" (8월12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던 2012년, 국회로 다시 돌아온 추 대표는 문재인 대선 후보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으며 친노 진영에 한발 다가섰습니다. 이후 대선에는 패배했지만, 2015년 문재인 전 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를 맡았을 당시 최고위원을 맡아 문재인 대통령을 돕는데 앞장섰습니다.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도운 추대표

안철수 전 대표의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을 전후해 문재인 대통령 흔들기가 극심했던 당시, 추 대표는 문 대통령을 적극 도왔으며, 민주당 많은 국회의원들이 “문재인으로는 안된다!”고 문재인 흔들기를 할 때도 추미애 의원은 “문재인으로 된다!”고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


이후 2016년 치뤄진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추미애 대표는 총 득표율 54.03%의 과반 확보로 압도적으로 당대표로 당선되었고, 현장 대의원 투표(51.53%)와 권리 당원 투표(61.66%), 당원 여론 조사(55.15%), 국민 여론조사(45.52%)에서 모두 압도적인 표를 받았습니다. 당원들의 표심을 보여주는 '친문' 세력을 보여주는 현장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에서 과반 득표를 한 것입니다.

봉하마을을 참배한 추미애 대표

당대표 당선 후에는 봉하마을을 참배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2017년 대선 선거운동

이후 더불어 민주당을 안정적으로 이끌며 대선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대선 때에도 더불어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으로서 전국 각지를 돌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기도 하였습니다.

청와대에 초청 받은 추미애 대표

이후 대통령 당선 후에는 "더불어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와 운명 공동체"라고 이야기 하며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내년 총선에서도 당선이 되면 또 한번 헌정사상 최초의 기록을 갈아치우게 되겠네요. 앞으로의 정치 행보도 궁금해 집니다.

만우절에 올린 옛날 국회의원회관 사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촛불사진전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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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노무현재단에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경록 pb의 인터뷰 녹취록 전문을 공개했습니다.

아래 카톡 사진은 알릴레오 방송 후 김경록 pb가 유시민 이사장에게 보내 온 카톡 메시지입니다.

현재 접속자 폭주로 사이트가 열리지 않는 분들을 위해 전문을 첨부합니다.
다운로드는 노무현재단에서 같이 올린 구글드라이브에서 받으셔도 됩니다.

https://drive.google.com/file/d/1cMDoh69S9b0D3Fxtz4QiZp-deWDx9XLg/view

(https://www.knowhow.or.kr/web/board/boardView.php?page=1&meta_id=found_news&pri_no=999448427&menuId=01010101&search_target=&search_wor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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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영 의원(지역구 구로 갑)이 더불어민주당의 새 원내대표로 선출되었습니다.

당선 후 홍영표 전 대표에게 꽃다발을 받으며 축하받고 있는 이인영 의원

386 세대를 아시나요?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말인데, 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을 '386'세대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그들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30대가 아니기에 '86그룹'이라고 하는데요, 주로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교 학생회 임원 출신 정치인이 많습니다.

연설중인 이인영 의원
검은 옷 왼쪽이 이인영 의원


이인영 의원 역시도 고려대학교 총학생회 회장 출신입니다. 이인영 의원은 고려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초대 의장을 지낸 386세대 학생운동의 상징 같은 존재였기도 합니다. 

우상호 의원, 김민석 전 의원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대표적인 정치인은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민석 전 의원, 이인영 의원, 우상호 의원 등이 있습니다. 

 

이인영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경선 결선에서 총 투표수 125표 가운데 76표를 획득하여 49표를 얻은 김태년 후보(이해찬 대표와 가깝고, 친문주류로 알려짐)를 여유롭게 제치고 당선되었습니다.

연설중인 이인영 의원

이인영 의원은 정견 발표에서 "우리는 변해야 승리할 수 있다"며 "저부터 변화를 결단한다. 제 안의 낡은 관념, 아집부터 불살라 버리겠다"고 밝히며 변화의 물꼬를 틀 것을 제안하였습니다.

당선인사중, 좌측부터 노웅래, 홍영표, 이인영, 이해찬, 김태년 의원

앞으로 패스트트랙 해결, 민생법안 통과 등 국회에 맡겨진 과제가 산더미 같은데, 잘 헤쳐나갈 수 있길 기대합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프로필>

· 1989년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과정에서 민주화운동가 이해학 목사의 딸과 결혼해 슬하에 딸이 있음.
· 1964년생(56세)충북 충주 출생
· 충주 중·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언론학 석사

<이력>
· 1987 고려대학교 20대 총학생회장
· 1987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1기 의장
· 1999 새천년민주당 창당발기인
· 2000 제16대 국회의원(구로갑) 낙선(새천년민주당)
· 2002 노무현대통령후보 선대위 인터넷선거특별본부 기획위원장
· 2003 한반도재단 동북아전략연구소 소장
· 2004 제17대 국회의원(구로갑) 당선(열린우리당)
· 2008 제18대 국회의원(구로갑) 낙선(통합민주당)
· 2010~2011 민주당 최고위원
· 2012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 2012~2013 문재인 18대 대통령후보 선대위 상임선거대책본부장
· 2012 제19대 국회의원(구로갑) 당선(민주통합당)
· 2016 제20대 국회의원(구로갑) 당선(더불어민주당)

2004년 열린우리당으로 초선 의원이 되었을 때 싸우지 않겠다고 초선끼리 다짐, 좌측부터 고 노회찬 의원, 김희정 의원, 이인영 의원

 

<수상 경력>
· 2003 제1회 박종철 인권상
· 2004 제3회 대한민국을 빛낸 21세기 한국인상
· 2007 제9회 백봉신사상
· 2013 국정감사 우수 의원상
· 2014 국정감사 우수 의원상
· 2014 입법 및 정책개발 정당 추천 우수 국회의원상
· 2015 제3회 대한민국평화대상 의정활동분야 수상
· 2015 국정감사 우수 의원상
· 2015 친환경 베스트 의원상
· 2015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 2015 한국유권자총연맹 국정감사 의정활동 우수 국회의원상
· 2015 대한민국 청소년육성대상 의정활동분야 수상
· 2015 안중근 평화대상 대상 수상
· 2016 국정감사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 2017 제6회 대한민국 CEO 독서 대상
· 2017 제10회 대한민국 국회의원 소통 대상
· 2017 제25회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 의정공로 대상
· 2017 제1회 대한민국 의정대상
· 2018 코리아 혁신 대상
· 2018 대한민국 모범 국회의원 대상
· 2018 국정감사 NGO 모니터단 국정감사 국리민복

안중근 평화대상 수상

 

 

 

지역구 청소중인 이인영 의원(평소에도 하시는지 ㅎㅎㅎ)
출석률 100%를 자랑하는 의정활동
지역구행사에서 운동중인 구로아재 이인영 의원
패스트트랙 대치중 민주당 의안과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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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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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오늘(6월 17일)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서울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으로 지명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문재인 대통령은 오전 7월 24일 임기가 끝나는 문무일 검찰총장 후임에 윤 지검장을 지명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발표했는데요.

검찰총장 추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검찰총장 후보 추천 위원회에서 4인(김오수(56·사법연수원 20기) 법무부 차관, 봉욱(54·19기) 대검찰청 차장검사, 윤석열(59·23기) 서울중앙지검장, 이금로(54·20기) 수원고검장)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
2. 법무부장관이 검찰총장 최종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
3. 대통령이 지명
4. 국무회의에서 임명제청안을 의결한 뒤 청문요청서를 국회에 보냄
5. 인사청문회 및 임명

오늘 위 과정 중 3번 과정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 서울 중앙지검장을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임명했습니다.

검찰 조직의 서열은 보통 검찰총장(대검 검사장) - 고검 검사장 - 대검 차장검사 - 지검 검사장의 순서로 이루어 지는데요. 현재 윤석열 서울 중앙지검장은 지검 검사장으로 재직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검찰청 차장검사 - 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뛰어 넘은 파격 인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당시만 해도 검찰 조직에서 좌천된 검사였습니다. 하지만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검찰의 꽃'으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2년 만에 고검장들을 제치고 검찰의 수장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검찰총장 임기제(2년)가 도입된 1988년 이후 고검장을 거치지 않고 총장으로 직행하는 첫 사례가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중앙지검장이 된 지난 2년간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등 적폐청산 수사를 지휘해 오며 청와대의 신뢰를 받아 왔기에 많은 사람들이 윤석열 지검장의 임명을 내심 관측하기도 했었지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3년, 여주지청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윤석열 검사는 당시 국정원 댓글 수사를 담당하던 팀장이었는데요, 직속 상관이던 서울중앙지검장의 재가(허락) 없이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파헤쳤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법정에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로 인해 사건을 은폐하려 했던 검찰 수뇌부와 마찰을 빚었고 수사팀에서 배제 되기도 했습니다. 그는 국정감사장에서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말을 남기며 국민들의 뇌리에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강하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강금원 씨를 구속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정직 1계월의 징계를 받고 한직(대구 고검 검사, 대전 고검 검사)을 떠돌게 되었습니다. 평검사로 좌천되던 시절에도 후배들을 위해 옷을 벗지 않겠다며 묵묵히 버틴 그였습니다. 그 시절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모든 제안들을 다 거절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오늘의 그가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2013년 국정감사

하지만 문재인 정권 출범 직후 문재인 대통령은 고검 검사이던 그를 검사장(지검장)으로 승진시켰고, 이어 서울중앙지검장(보통은 고검장이 맡음)에 파격적으로 임명했습니다. 전임 서울 중앙지검장보다 5기수가 더 낮지만 그를 임명했었지요.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발탁 배경에 대해 "지금 현재 대한민국 검찰의 가장 중요한 현안은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수사와 공소유지라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검사가)그 점을 확실하게 해낼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후 윤 후보자는 국정농단 사건부터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까지 주요 적폐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하며 청와대의 신임을 얻어 온 것이지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2013년 국정감사
박영수 특별검사와 함께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프로필


윤석열 검사의 고향은 서울로, 서울 충암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에 79학번으로 입학합니다. 그의 대학 동기는 김수남 전 검찰총장 등이 있습니다. 그는 대학교 4학년 때 사법시험 1차에 합격했으나 2차에서 거듭된 낙방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려 사법시험 9수 끝에 1991년, 32살의 나이로 사법시험에 합격하게 됩니다.

검찰 내 특수통



그렇기에 윤석열 검사 보다 기수는 높아도 대부분 나이가 어린 검사들이 대부분입니다. 검찰은 상명하복 문화가 뚜렷한 조직이기에 공식 업무를 할 때에는 철저히 기수 중심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문무일 현 총정과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그렇기에 윤석열 검사도 자신보다 어리지만 기수 상으로 선배인 검사들을 선배로 깍듯이 예우했다고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사석에서는 '형님', '선배' 등으로 호칭을 불렀다고 하네요.

이후 늦깎이로 검찰 조직에 몸 담았다가 2002년에는 검사를 그만두고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1년 정도 일 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선배들의 권유로 다시 검찰에 복귀한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이후 그는 검찰에서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로 꼽혀 왔습니다.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 2007년 변양균 신정아 사건 등 굵직한 사건들을 담당해 오기도 했습니다.

2013년 국감장을 박차고 나가는 윤석열 검사

윤석열 검사는(23기)는 현 검찰총장인 문무일 총장(18기)과도 5기수나 차이가 납니다. 문무일 총장과의 나이 차이는 1살로 윤석열 후보자가 1살 더 많습니다.

문무일 총장, 윤석열 총장 후보자

윤석열 후보자가 고검장 선배들을 제치고 검찰총장 후보자가 된 만큼 검찰 내부의 관례에 따라 윤석열 검사보다 기수가 높은 검찰 간부들이 검찰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는 2012년에(당시 53세) 12살 연하의 부인과 뒤늦게 결혼(재혼아 아니라 초혼)했습니다. 부인은 문화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상당한 재력가라고 합니다. 1990년대 후반 주식으로 번 돈을 밑천 삼아서 사업을 하며 재산을 불려 왔다고 하네요. 결혼 당시 윤석열 검사는 통장에 2천만원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윤석열 후보의 재산은 지난해 3월 기준 64억 3600만원으로 검찰 고위직 가운데 1위라고 합니다. 하지만 윤석열 검사의 재산은 2억 4천만원이고, 나머지는 다 부인의 재산이라고 하네요.

윤석열 부인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이사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는 지난 2012년, 53세에 결혼했습니다. 한 스님의 소개로 '아저씨'라고 부르며 알고 지내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영 결혼하지 못할 것 같아 결혼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네요 ㅎㅎ 윤석열 검사의 부인은 2008년 설립된 코바나컨텐츠의 대표이사인 김건희 씨 입니다. 코바나 컨텐츠는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를 제작 및 투자하는 문화예술 기업입니다. sbs 아나운서 출신인 김범수 씨가 코바나 컨텐츠 부사장으로 활동했던 적도 있죠.

코바나 컨텐츠는 우리가 아는 굵직한 작품들을 한국에서 많이 기획, 전시한 것으로도 유명한 기업입니다. '윤석렬 부인 김건희'라고 불릴 인물이 아닌 정도의 인물인 것이죠.

윤석열 부인 김건희 씨


김건희 씨는 1972년생으로 개명 전 이름은 김명신이라고 합니다. 김건희 씨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서울대 경영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고 합니다. 페이스북에서 '김건희'로 검색하면 페이스북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전시하는 작품들과 관련된 게시글 들이 많네요.

김건희 씨 페이스북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재산신고 때 ‘과다 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추가징계를 받을 뻔 한 일화도 있습니다.
윤석열 검사가 2012년 부인과 결혼하면서 부인이 7~8년 전 아파트를 구입하며 대출받은 채무 4억5000만원을 신고하지 않아 재산을 과다 신고했으며 채무를 감추는 것 역시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입장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에 대한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사형을 구형한 일화도 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모의재판이라고 해도 이런 일이 알려지면 기무사로 끌려가거나 징역살이를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닌데 대단한 한 일이지요.

윤 후보자는 이 모의재판 후 한동안 강원도로 도피했다고 합니다. 그의 성품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1960년 출생
고향 서울


1979년 서울 충암고 졸업
1983년 서울대 법대 졸업
1988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졸업

1991년 제33회 사법시험 합격
1994년 사법연수원 수료(제23기)
1994년 ~2001년 대구지검, 춘천지검 강릉지청, 서울지검, 부산지청 검사
2002년 변호사 개업(서울회, 법무법인태평양)
2003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2005년 의정부지검 고양지청 검사
2006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연구관
2008년 대전지검 논산지청장
2009년 대구지방검찰청 투수부장검사
2009년 대검찰청 범죄정보2담당관
2010년 대검찰청 중수2과장
2011년 대검찰청 중수1과장
2012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검사
2013년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2014년 대구고등검창청 검사
2016년 대전고등검찰청 검사
2017년 5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평검사로 좌천되었던 시절의 윤석열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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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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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하셨습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희호 여사가 오늘 오후 11시37분 소천했다."고 밝혔습니다. 향년 97세.

이희호 여사는 그동안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노환으로 입원해 계셨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의 임종은 차남 김홍업, 삼남 김홍걸 씨를 비롯한 가족들이 지켰다고 합니다.

엄혹한 시절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 부부를 생사의 기로에 서게 했던 사람은 아직도 정정한데
피해를 입은 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시는 걸 보면 야속한 마음도 드는군요.

북유럽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이희호 여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셨네요.
글을 읽는데 그 마음이 와 닿아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 글

또한 DJ(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글을 남겼습니다.

가족들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려고 입을 움직이시면서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빈소 준비관계로 내일 11일 오후 2시 부터 조문이 시작되며, 이희호 여사의 발인은 14일 금요일이라고 합니다.

박지원 의원의 페이스북 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은 이희호 여사에 대한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는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부인 중 최장수한 영부인이라고 합니다.

제15대 대통령 취임식 때

이희호 여사는 1922년생으로 이희호 여사의 고향은 서울.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희호 여사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식을 일깨웠던 감리교(기독교) 집안의 두 남녀가 만나 결혼했고,
그들이 이희호 여사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했습니다.

학교에 못 다닌 게 한이었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여자도 공부해야 해”라며 이희호 여사를 다독였다고 합니다.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왼쪽이 이희호 여사)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 이화여고),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문과를 졸업(일제로 인해 2년만에 강제졸업)했습니다.

이화여고 시절(맨 오른쪽)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대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하여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시절 이희호 여사

이후 3학년 때 서울대 교육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하게 됩니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동기들과 함께

서울대 졸업 후 미국 램버스 대학 사회학, 미국 스카릿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이희호 여사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 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의 단체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정치인 반대 운동, 혼인신고 하기 등의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쳐 일했습니다.

여성지도자로서 최루탄 추방대회에 참가한 이희호 여사

특히 여성 문제, 아이들과 노인,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합 ‘1984년도 인권상’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올해의 탁월한 여성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2008년 발간 된 이희호 여사의 회고록 '동행'을 읽어보면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소녀 시절에는 "희희호호 웃는 이희호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재기 발랄한 소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일 하는 여성리더를 꿈 꿔 왔습니다.

그러던 중 1951년 부산 피난 시절, 30세에 평생의 동반자 김대중(당시 28세)이라는 청년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인 차용애 여사가 1959년에 병으로 별세하게 되었고,
아무런 연락 없이 지내던 두 사람은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1961년 늦가을부터 자연스럽게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62년 5월 10일, 서울 종로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이희호 여사 41세, 김대중 대통령 39세) 당시 이희호 여사의 집안과 주변에는 반대가 극심했으나, 청년 김대중의 성실성, 신념, 관용, 멋에 이끌렸으며,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혼식 때 가족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나는, 그의 의지와, 신념과, 관용과, 멋스러움을 사랑하고, 특히 남녘 땅 그의 고향 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그 활짝 웃는 모습을 몹시 사랑하지만, 그 보다도, 내가 그의 동역자로서 나의 인생을 그에게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조국을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랑, 우리의 사랑은 곧 조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희호 여사는 서울대를 나온 최고 엘리트였으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고졸에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낭인으로 지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듭되는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61년 선거에서는 당선되었으나 5.16으로 인해 감옥에 가야했던 꿈 많은 젊은 정치가일 뿐이었습니다.

가족사진(아기는 김홍걸, 맨 오른쪽은 김홍일)

게다가 이희호 여사는 초혼(당시 계훈제 라는 분과 결혼할 뻔 했으나 하지 않았음)이었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부인과의 사별로 중학생이던 두 아들(김홍일, 김홍업)도 기르고 있었으며,
홀어머니와 심장병에 걸린 시누이도 모셔야 했기에 주변 사람들의 반대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결혼 후 두 사람은 3남인 김홍걸 씨를 얻게 되었습니다.

80년대 동교동 문패(김대중, 이희호, 김홍일)

이희호-김대중 부부는 남자가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되던 시절부터 집 앞에 부부의 이름을 문패로 나란히 붙였습니다.
서로를 존중했던 부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00년대에도 이어진 부부의 나란한 문패

 

1963년 목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된 후 당선사례(이희호 여사는 당시 김홍걸 씨 출산 2주 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희호 여사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오게 만들어 버립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망명, 납치, 구금, 연금의 연속이었고, 이로 인해 남편을 위한 석방 투쟁과 정치활동, 가장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 음료를 건네는 이희호 여사
1976년 김대중 석방운동 중인 이희호여사, 김홍일 전 의원

심지어 1980년에는 남편인 김대중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그 시절 미국 백악관에 직접 구명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사형선고
김내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김대중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극적으로 석방되었고, 오랜 기간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1982년 미국 망명 당시
미국 망명 당시 김대중, 이희호 부부와 세 아들


이러한 시련들은 두 사람을 부부애를 넘어선 동지로서 살게 했습니다.

1985년 미국 망명 후 귀국해서
1987년 6월 항쟁 승리 후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며 눈물 흘리는 김대중
자유의 몸이 된 후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뒤 늦게 분향을 하고 있는 사진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거듭 낙선(71년, 87년, 92년)을 경험하였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하느님은 나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 이제 정계를 떠나려고 하오.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써주오."
구술을 받아 쓰다가 눈물 흘리는 이희호 여사의 손을 잡고 김대중 대통령은 "여보, 우리 1980년 사형선고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웃을 일 아니오."라고 서로를 다독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은퇴 기사

하지만 1996년 다시 정계 복귀를 선언 하였고,
마침내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은 15대 대통령에 당선(당시 이희호 여사 76세, 김대중 대통령 74세)되었고, 두 사람은 청와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96년 정계복귀 선언 관련 기사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 당선
1998년 2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내 한 몸 바치겠다는 큰 꿈과 열정이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그는 늘 책을 읽고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그랬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나는 이 비범한 남자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평안한 노후를 보내시던 두 분에게 시련이 닥쳤는데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 몸의 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했는데요,
그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2009년에 김대중 대통령도 서거하시게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이런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관에 함께 넣은 이희호 여사의 편지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여러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최근 노환으로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셨다고 합니다.

2018년 10월 손학규 대표 방문 때

다시 살펴보니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지만 이희호 여사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가 없었다면 과연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11년 김대중 광장 방문
가족들과 함께


두 분이 다시 만나신다면 아픔은 잊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남 고 김홍일 전 의원의 이야기를 읽으시려면 아래 글을 클릭해 주세요.

2019/04/20 - [정치사회 뉴스] - 김홍일 전 의원 별세

 

김홍일 전 의원 별세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오후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80년대에 독재를 일삼으며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사람도 90이 넘어서도 건강하게 사는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받은 고문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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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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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지역구 경기 용인시 병)은 오늘 황교안 대표의 백브리핑(백브리핑 뜻: 백그라운드 브리핑, 회의가 끝난 뒤 진행되는 비공식 브리핑)을 듣기 위해 바닥에 앉아 있는 기자들을 향해 "걸레질을 한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한선교 사무총장은 3일 한국당 최고위원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회의실 앞 바닥에 앉아있는 출입기자들을 향해 "아주 걸레질을 하는구먼, 걸레질을 해"라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황교안 대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질문하기 위해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은채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기자들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걸레질'에 비유한 것이지요. 당연히 이 말을 들은 기자들은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백브리핑 하는 기자들의 모습

백브리핑은 회의장 밖에서 대기를 한 뒤, 취재원(황교안 대표)이 나오면 질문을 하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트북에 발언을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 앉아 질문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형태로 기사를 쳐야 하는 것이지요.

백브리핑 하는 기자들의 보습

 

논란이 불거지자 한선교 사무총장은 "(기자들이) 바닥에 앉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자리를 앞으로 가려고 엉덩이로 밀고 가니까 보기 좋지 않아서 그렇게 (발언)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한선교 사무총장은 5월 7일 자유한국당 사무처 직원들에게 심한 욕설(X같은 XX야, X발 꺼져!)을 하는 등 막말 논란이 한 차례 불거졌었지요. 당시 한 사무총장은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혀 일단락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 번 막말 논란, 그것도 기자들을 향해 막말을 해서 일이 커질 수도 있겠네요.

또한 2016년 10월 13일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성희롱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한선교: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
유은혜: 사과하세요.
한선교: 선배로서 좋아하냐고 물은 것이다. 동료 의원이 저를 보고 비웃듯 웃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있겠냐?

그러나 이 발언이 성희롱이라는 비판이 잇따르자 한선교 사무총장은 "저로 인해 교문위 회의에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개인적으로 유 의원이 학교 후배라 긴장감을 놓친 것 같다"고 변명하기도 했었습니다.

유은혜 교육부장관

한국당의 막말 퍼레이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나경원 대표의 달창 발언, 김현아 의원의 한센병 발언, 정용기 정책위의장의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자로서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나은 면도 있는 것 같다"발언, 민경욱 대변인의 '골든타임 3분' 발언 등 셀 수 없이 많은 지경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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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대변인의 경우 지난 1일 헝가리 유람선 참사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을에 "일반인들이 차가운 강물 속에 빠졌을 때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라고 언급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구조대를 지구 반 바퀴 떨어진 헝가리로 보내면서 '중요한 건 속도'라고 했다"고 언급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구 반대 편에 있든, 한국에 있든 중요한게 속도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헝가리에 있으면 천천히 일을 진행해도 되는 것일까요?

 

황교안 대표는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막말 논란과 관련 "저희 당은 사실에 근거한 정당, 사실을 말하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 그 과정에 혹시라도 국민 심려를 드리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비공개 회의에서는 “저도 제 발언이 당의 이미지로 굳어질 수 있다는 염려에 항상 삼사일언(三思一言), 즉 세 번 생각하고 한 가지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 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러한 말을 한 직후 바로 '걸레질' 발언이 터지게 되었네요.

심기가 복잡한 자유한국당

이러한 막말 발언에 대해 각 당의 성토가 이어졌는데요, 김정현 평화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한 사무총장이 취재기자들을 향해 '걸레질한다'고 한 것은 그간 그의 막말행적을 볼 때 고치기 힘든 습관성 고질병"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김정현 평화당 대변인

한선교 의원은 MBC 아나운서 출신인데요, 아나운서 시절에는 참 이미지가 좋은 아나운서였지요.

 

지금은 인상이 좀 변했는지 인터넷에 한선교 얼굴변화라는 글도 있을 정도입니다. 저도 한 번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90년대
2006년

 

2010년

 

2014년

2018년

 

2019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제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하는 발언의 무게를 느끼고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 해야겠네요.

 

문재인 정권이 예쁜 아나운서(배현진)를 민주 투사로 만들었다??
'친박연대'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시절

아래는 한선교 의원의 프로필입니다.

1959년, 61세
한선교 고향 서울 출생

한선교 의원의 부인은 MBC PD 출신의 하지현씨이며, 자녀는 딸 두 명이 있습니다.


학력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문학 석사
~ 2007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 1985 성균관대학교 물리학 학사
~ 1977 대일고등학교 졸업

경력
2019.3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2016.5 제20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12.5 ~ 2016.5 제19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11.6 ~ 2014 제7대 한국농구연맹 총재
2008.5 ~ 2012.5 제18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07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 대변인, 수행단장
2004.5 ~ 2008.3 제17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04.3 한나라당 대변인
1999 서울방송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 공동진행
1984 ~ 1995.4 문화방송(MBC) 편성국 아나운서팀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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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발탁 된 김외숙 변호사의 프로필과 이력, 그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대한변협 회지에 기고한 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외숙 법제처장을 신임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임명했습니다. 김외숙 변호사는 법무법인 부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평생 소외 계층의 권리를 위해 싸워 온 인권변호사입니다.

김외숙 인사수석의 고향은 경북 포항입니다. 1989년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1992년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립한 법무법인 부산(이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를 하게 되면서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에서는 1995년부터 소속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도 줄곧 법무법인 부산을 지켜왔습니다.

법무법인 부산 설립 시절, 왼쪽에서 세번째가 문재인 대통령, 다섯번째가 김외숙 수석

김외숙 변호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인권변호사로 훌륭한 역할모델이었던 문 변호사 때문”이라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같이 일을 하는 내내 본 모습으로 말씀 드리면 한결같은 사람이다. 처음과 끝,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다”라며 “처음에는 근사해 보여도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속속 들이 알게 되면 단점도, 눈에 거슬리는 점도 나타나게 마련이지 않나. 하지만 문 변호사님은 그런 게 전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법무법인 부산 야유회


당시 김외숙 변호사는 변호사 등록을 할 사무실을 여러군데 알아 보았는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알게 되고, 그에 대한 평판도 듣게 되면서 문재인 변호사에게 함께 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부산에서 변호사 등록할 때 알아보니 당시 전국에 여자 변호사가 21명이었다. 그 중 19명이 서울에 있고, 나 빼고 부산에서 대학을 나오신 한 분이 부산에서 일하고 계셨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일한 여성 변호사 2명 중 1명이었던 셈이다.(부산 2호 여성변호사)

이름이 다 남자 이름이지요? 아는 이름들이 많네요.

김외숙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동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니까 반가워하신 것 같다”며 “이런저런 내 생각을 말씀 드리니 흔쾌히 같이 하자고 하셨다”고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근무 시절인 2003년 2월∼2008년 2월 법무법인 부산을 탈퇴했고, 청와대 근무를 마친 2008년 9월 다시 합류하여 대선에 출마하기 전엔 2012년까지 대표 변호사로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김외숙 수석의 발탁 배경을 "균형있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균형감있는 시선, 따뜻한 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 노동인권 변호사로서의 역할, 법제처장으로서의 성공적인 업무 수행이 앞으로 균형적 인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외숙 인사수석의 가족으로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7년 경북 포항
▲포항여고, 서울대 사법학과
▲미국 버지니아대 로스쿨
▲법무법인 부산 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법제처장(문재인 정부 초대 법제처장)

아래 글은 2012년, 김외숙 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대한변협 회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당시 M변호사라고 썼으나,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것은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었지요. 한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신사의 품격'
김외숙 변호사

우연히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돌리던 채널을 아는 얼굴이 나오는 곳에 잠시 멈추었더니 요즘 한창 인기가 좋다는 ‘신사의 품격’이었다.
중간에 잠깐 한번 본 것으로 그 드라마를 마치 잘 아는 양 나대고 싶진 않다.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거기에는 나이 마흔을 넘긴, 매끄럽고 세련된 남자 4명이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수려한 외모, 폼나는 직업, 멋진 차림새는 남자의 로망을 망라한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어디 인생이 그렇게 매끈하고 화려하기만 한가?’ 이죽거렸다. 현실이 그게 아닌데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것에 그만 심사가 꼬였던 것이다.
얼마 안 가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신사가 되지 못한 소년이라 부르며 맥주잔을 맞부딪치는 장면이 있었다. ‘그래. 아무나 신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긴 아는구나.’ 그제야 불편했던 심기가 풀리며 드라마가 보였다.
모름지기 누군가를 신사라고 할 때는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품격을 보는 것이다. 소위 꽃중년 신드롬에서는 신사의 품격을 느낄 수 없다. 부산에는 진짜 신사들이 아주 많은데 그분들 전부를 소개하기에는 안타깝게도 지면이 너무 좁다. 하지만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부산 법조계의 멋진 신사들을 소개하고 싶다.

신사 M: 인간에 대한 예의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M변호사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반, 부산·경남지역에서 노동, 인권사건은 M변호사가 도맡고 있었다. 혼자 잘먹고 잘살기 위해 고시공부를 한 건 아니라고, 나름대로 정의감에 충만해 있던 예비 법조인들에게 그는 훌륭한 역할 모델로 이름나 있었다. 노동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불쑥 찾아간 나를, 그는 흔쾌히 맞아 주었다. 체력이 약해 비실거리지나 않을지, 출산이나 육아로 업무에 지장을 주진 않을지 등등 여자라서 일시키기에 불편할까 따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때까지 사회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던 나는 M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변호사를 시작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사람에 대해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서히 알아갔다. 나만 해도 변호사로서 조금 꾀가 나기 시작하자 사람을 가려 판단하고, 지레 선입견으로 말을 자르고, 유불리를 따졌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변호사의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라 여겼다.


하지만 M변호사는 달랐다. 내가 보기엔 반복되는 쓸데없는 이야기, 순전히 억지뿐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당사자에게도 그는 그렇게밖에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을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절망에 빠져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그를 찾았다. 돈 받고 남의 일 해주는 변호사지만 그렇게 신뢰와 의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보았다.


수년 전의 일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아주 질기고 질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건이 그렇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사건 본래의 성격이 그렇거나, 아니면 당사자가 독특하거나.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고 당연히 M변호사를 보고 찾아온 의뢰인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청구취지에 담길 수 없는 내용을 주문했고, 한 가지를 설득시키고 나면 다른 요구사항을 들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녀의 주치의들과 법원 근처의 웬만한 법률사무소들도 이미 두 손을 든 상태였다. 그녀는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고, 불쑥 나타나 오랜 면담으로 업무를 중단시키고도 돌아서면 다시 할 말이 생각나는지 전화로 M변호사와의 통화를 요구했다. 직원들은 그녀의 성화에 전화를 바꿔주지 않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M변호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M변호사는 그 흔한 “법정 갔다고 그래”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가끔 얼굴을 찌푸리며 담배를 찾을지언정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소를 끈덕지게 듣고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운 상황에서조차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결국에는 M변호사의 한결같은 태도가 세상에 모든 원통한 일을 혼자 당한 듯이 응어리진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사무실 식구들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신사의 품격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데 있고 그 예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나오는 것임을 오늘도 되새긴다.

법제처장 임명장 수여
법제처장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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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오늘(22일) 모친상을 당했다고 합니다. 어제 밤에 '오늘밤 김제동'에 출연하셨기에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나봐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팬클럽인 '시민광장'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아래는 편지의 전문입니다.

「 어머니의 별세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회원 여러분.
제 어머니가 여든 아홉해를 살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병상에 계셨던 지난 2년 반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여러차례 표현하셨습니다.
다시는 목소리를 듣고 손을 잡을 수 없게 된 것은 아쉽지만,
저는 어머니의 죽음이 애통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담담하게 보내드렸습니다.
조문을 가야할까, 생각하시는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저를 위로하러 오실 필요는 없습니다. 슬프거나 아프지 않으니까요.
제 어머니를 생전에 아셨고, 꼭 작별인사를 하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굳이 오시지 말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 '서동필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해 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래도 꼭 오시겠다면, 꽃이나 조의금은 정중하게 사양하기로 저희 6남매가 의견을 모았다는 점을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간단한 다과를 준비했으니 함께 나누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사유할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위로 말씀과 마음의 인사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우리들 각자의 삶을 의미있게 꾸려나가기로 합시다.


유시민 드림」

 

 

신문에 난 부고 기사는 다음과 같네요.

▲서동필씨 별세, 유시훈·시민(노무현재단 이사장)·시춘(소설가)·시정·시은·시주(희망제작소 기획이사)씨 모친상, 손병국·신현능·유동환씨 빙모상, 임영희·한경혜씨 시모상 = 22일, 일산병원 장례식장 8호실, 발인 24일. 031-900-0444

모친상을 당했기에 유시민 작가는 23일(목)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노무현재단은 "유시민 이사장이 추도식에 참석하기 어려워 노무현 재단의 정영애 이사가 인사말을 대신 낭독하게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최근 모친의 병세가 악화되어 이전부터 유시민 이사장의 불참 가능성에 대비해 왔다고 합니다.

유시민 작가는 1959년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장은 대구에서 했습니다.(수성초등학교, 대륜중학교, 심인고등학교) 유성룡 대감의 직계 후손인 풍산 유씨라고 합니다.

유시민 작가의 아버지는 역사 교사 출신인 유태우 씨, 어머니는 담배포가 딸린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셨다고 합니다. 지금도 예전에 살던 대구 동네에 가면 '담뱃집 둘째 아들'로 통한다고 합니다.

 

유시민 작가와 어머니

 

2남 4녀 중 다섯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누나는 유시춘(소설가, EBS 이사장), 여동생은 유시주(희망제작소 이사) 씨이기도 합니다.

유시춘 ebs 이사장
동생 유시주 씨

그의 부인 한경혜씨는 학력고사에서 제주도 전체수석을 하고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했다고 합니다. 부부의 딸 유수진 씨는 서울대 사회대학에 입학하여 사회대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박근혜 정권 당시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아버지에 멋진 그 딸이네요. 그리고 유시민 작가, 한경혜 교수의 아들 유지현 군도 올해 서울대에 입학했다고 합니다. 강남의 자사고에서 계속 최상위권을 유지했었다고 해요.


어린 시절 밥은 꼬박 먹었지만 학교에서 주는 탈지분유와 옥수수죽을 받아서 먹는 친구들을 보고 가난이 뭔지, 그 차이에 대해 어린 마음에 고민했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역사교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 부터 역사 이야기를 듣거나, 한 주제를 두고 형제들, 아버지와 토론한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유시민 작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투표소에서 가족과 함께

중학교 시절까지는 평범한 학생이었으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성적이 아주 우수했다고 합니다. 다만, 수학에는 재능이 없어서 당시 본고사를 위해 수학책 세 권을 통째로 암기 했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가정 형편상 학문을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하여 막연히 법학과에 가서 사법시험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1978년 서울대학교 사회계열(당시 사회계열로 들어가서 법학과로 전공 진입 하는 형태)로 입학하였습니다.

 

입학 후 농촌법학회에 가입했는데, 그의 토론 실력은 그 시절부터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979년 제정된 유신헌법(박정희가 죽을 때 까지 대통령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음) 하에서 선배들이 처벌받는 현실, 유신헌법을 공부하여 그것으로 시험을 보는 것, 박정희 정권에서 판검사로 일하는 것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전공 진입을 법학과가 아닌 경제학과로 선택합니다.

이 때 활발히 공업단지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야학에 참여했는데, 이때 그를 야학으로 이끈 사람이 바로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인 심재철(현 자유한국당 의원)입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


1980년, 전두환의 신군부세력이 12.12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후 1980년 봄이 되며 민주화 운동은 들불처럼 퍼져 나갔고,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당시 10만명 이상의 대학생 및 시민이 자발적으로 모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학생 지도부 회의에서 신계륜(고려대 총학생회장) 등의 철야 농성 주장과 심재철의 퇴각하자는 주장이 부딘힌 끝에 심재철이 해산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역 회군 사건)

이후 독일 유학을 다녀왔고,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면서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었는데요, 그 뒤의 얘기는 나중에 추가하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 대구 수성구에 출마 했으나 낙선
유시민의 알릴레오(유튜브)

마지막으로 제가 참 공감했고, 힘을 얻었던 유시민 작가의 말로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유시민 작가 본인도, 유시민 작가의 어머니도 여기에서 말씀하신 삶을 사신 것 같아 부럽기도 하고 저도 본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오늘이네요.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노무현재단 현 이사장 유시민 작가 - 전 이사장 이해찬 의원
노무현 재단 이사장 취임식 - 이해찬 대표의 요청으로 수락
참여정부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되던 날의 표정

2019/04/20 - [정치사회 뉴스] -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전문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전문

유시민은 1980년대에 무고한 민간인을 안기부 프락치로 몰아서 감금, 고문(물고문, 각목으로 구타하는 것 등)을 했던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주모자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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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27 - [정치사회 뉴스] - 유시민 백바지 의원 선서 논란 다시 보기

 

유시민 백바지 의원 선서 논란 다시 보기

27일 방송되는 '대화의 희열2'에서 정치인 유시민의 국회의원 선서를 하던 때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른바 '유시민 백바지 사건'이죠. 2003년 재보선으로 경기 고양 덕양갑 당선 직후 유시민 작가는 국회에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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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가수 승리와 유인석 유리홀딩스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습니다.

승리 구속영장 기각
유인석도 기각
승리와 유인석

(구속영장 기각 뜻, 기각이란? ↔ 구속영장 발부)
1) 구속영장 발부: 피의자를 경찰서 유치장에 구속
2) 구속영장
기각: 피의자를 석방하여 불구속 수사하거나, 보강수사를 하여 구속영장을 재신청(이문호의 경우 보강수사로 1번 기각 후에 구속됨)

일단은 집으로...

승리의 경우에도 보강수사를 통해 증거를 보강하고 혐의를 입증하게 되면 추후에 구속영장을 재신청해서 구속될 수도 있고, 아니면 불구속 수사할 수도 있게 됩니다.

<승리와 유인석의 혐의> 
1. 성매매 알선 혐의: 2015년 일본인 투자자를 상대 크리스마스 파티

성매매 알선 혐의

2. 성매매 알선 혐의: 2017년 필리핀 팔라완에서 열린 승리의 생일파티에도 여성들을 불러 성접대를 벌인 혐의

팔라완 생일파티 사진

3. 브랜드 사용료 명목으로 투자회사 유리홀딩스의 자금 수천만원과 버닝썬의 자금 5억여원을 횡령한 혐의

버닝썬

4. 클럽 바 몽키뮤지엄의 브랜드 사용료 5억여 원을 빼돌린 정황
5. 몽키뮤지엄 운영 당시 일반음식점으로 구청에 신고한 정황

승리


이외에도 불법촬영물 유포 혐의도 있지만 구속영장 신청 단계에서는 빠졌습니다.
구속영장에는 확실하게 확인된 혐의만 포함한다는 원칙이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 "주요 혐의인 법인자금 횡령 부분은 유리홀딩스 및 버닝썬 법인의 법적 성격, 주주 구성, 자금 인출 경위, 자금 사용처 등에 비춰 형사책임의 유무 및 범위에 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
2. "나머지 혐의 부분과 관련해서도 혐의 내용 및 소명 정도, 피의자의 관여 범위, 피의자신문을 포함한 수사 경과와 그 동안 수집된 증거자료 등에 비춰 증거인멸 등과 같은 구속사유를 인정하기 어렵다"
3. 결론: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할 수 없어 본건 구속영장청구를 기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귀가하는 승리

<신종열 부장판사 프로필>
1972년생 경남 창녕 출신인 신종열 부장판사는 올해 48세입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재학중이던 1994년 23살 때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신종열 부장판사는 2000년 서부지원 판사로 임관해 대구지법, 서울고법,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쳐 서울중앙지법 영장부에는 지난 2월 보임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영장부에 임관한 지 아직 3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 동안 굵직굵직한 사건을 많이 맡았네요.

물론 나름의 기준이 있어서 판단했겠지만 그 결론이 참 허탈하긴 하네요. 하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된다고 무죄인 것은 아닙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진행하여서 추후에 구속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재판이 끝날 때 까지 지켜봐야 겠네요. ​

<신종열 판사가 구속영장 기각시킨 사건 사람들>
1.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과 관련한 성범죄 및 뇌물 의혹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씨

건설업자 윤중천
윤중천


신종열 부장판사는 "현 단계에서 피의자조사를 위한 48시간의 체포 시한을 넘겨 피의자를 계속 구금하여야 할 필요성 및 그 구속의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윤중천 기각 사유


2. 인체 유해성을 인지하고도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다는 의혹을 받는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
안용찬 전 애경 대표


신종열 부장판사는 “가습기살균제 원료물질 유형에 따른 독성 및 위해성 차이, 그로 인한 형사책임 유무 및 정도에 관한 다툼 여지, 흡입독성실험을 포함한 가습기살균제 피해 조사 및 수사 진행 경과,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의 범위와 내용을 고려하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3. 버닝썬 마약공급 의혹을 받고 있는 버닝썬 MD 출신 중국인 애나

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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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열 부장판사는 “마약류 투약 범죄 혐의는 인정되나 마약류 유통 혐의는 영장청구서 범죄 사실에 포함되지 않고 소명이 부족하며 초범인 점 등을 고려하면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현재까지의 수사 경과 및 수집된 증거 자료 등도 범죄 혐의를 입증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4.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이문호 대표 → 4월에 보강수사를 통해 구속됨

이문호 기각(3월)
이문호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마약류 투약, 소지 등 범죄 혐의에 관한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신 판사는 "현재까지 증거자료 수집과 혐의 소명 정도, 관련자들의 신병 확보 및 접촉 차단 여부, 수사에 임하는 피의자 태도, 마약류 관련 범죄 전력, 유흥업소와 경찰 유착 의혹 사건과의 관련성 등에 비춰 현 단계에서 피의자를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증거 보강 후 영장 재청구 끝에 이문호는 구속됨

 

하지만 신종열 부장판사는 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부에 있던 작년 10월, 한유총과 유치원 원장 5명이 지난 15일 MBC를 상대로 낸 감사결과 공개금지 가처분신청을 31일 모두 기각한 적이 있습니다. 언론사가 유치원 감사결과를 실명으로 공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의 요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입니다. 국민의 알권리를 중시한 것이지요.  버닝썬은 다 기각했지만, 한유총 건은 국민 정서에 부합(?)하는 판단을 하기도 하였네요.

한유총

오늘(15일)은 박근혜 정부 시절 선거개입 등 정치에 불법 관여한 혐의를 받는 강신명, 이철성 전 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신종열 부장판사가 담당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어떤 결과가 나올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
이철성 전 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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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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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내용 추가)
오늘은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이 막말을 해서 논란이 되고 있네요.
대통령을 한센병 환자에 비유한 것입니다. YTN '더뉴스'에 출연한 김현아 의원의 막말 전문입니다.
김현아 의원은 지역구가 없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자유한국당 초선 의원입니다.

김현아 의원: "한센병이죠. 만약에 대통령께서 본인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 국민의 고통을 못 느낀다면 그러한 의학적 용어들 쓸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회자: 발언이 부적절 하다는 취지의 말)

김현아 의원: "대통령께서 본인과 생각이 다른 국민을 어떻게 생각하시느냐에 따라서 저는 똑같은 대입을 통해서 대통령에게도 사이코패스가 아니냐라고 물어볼 수 있다는 겁니다."

자유한국당이 막말에 재미가 들렸나 봅니다. 이렇게 하면 지지층이 더 결집한다고 믿는건가요?

당시 김현아 의원은 '무한도전-국민내각' 특집에 출연했었는데요, 바른 정당으로 가냐 마냐 하던 때에(탈당하면 비례대표 직을 잃게 됨) 자유한국당 대표로 무한도전에 나갔었죠.

오른쪽 두 번째가 김현아 의원

당시 자유한국당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기도 했는데, 기각되었었죠. 무한도전에 출연했을 때만 해도 좋은 이미지로 봤는데, 총선이 다가오니 마음이 급하셨던 걸까요? 자충수를 던지셨네요.

무한도전 출연 당시 김현아 의원

+5/14 내용 추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오늘(14일) 국회에서 열린 '문재인 선거법·공수처법·민생파탄 토크 콘서트'에 참석해 "국회 파국에는 여당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현 정부는 답이 안 나오는 꼰대 정당, 꼰대 정권"고 국회 파행의 책임을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으로 돌렸습니다.

나경원

또한 지난주에 달창 발언에 이어 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 용어를 또 다시 사용해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문노스'라고 비난한 것입니다.
문노스의 뜻은 문재인 대통령에 영화 '어벤져스'의 악당인 '타노스'를 결합한 단어로 주로 일베에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극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일베(일간베스트)’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것 같네요...
저도 인터넷을 많이 해서 달창은 들어봤는데 '문노스'는 오늘 처음 들어보네요.

영화 '어벤져스'에서 악당으로 등장하는 타노스가 사용하는 장갑에 인피니티 스톤(돌) 6개를 붙여 우주 파멸을 꿈꾸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경원은 문재인 대통령를 악당인 타노스에 빗대어 '문노스'로 표현한 것이지요.

나경원 원내대표는 "요새 영화 어벤저스가 유행인데, 타노스의 장갑이 유행이다"라며 "(인터넷 상에서) '문노스의 장갑'이라는 패러디가 유행"이라고 했습니다.(아래 혐오 사진 주의)


첫 번째 방송 장악, 두 번째 사법부 장악, 그리고 헌법재판소까지 장악하고 남은 게 선거법과 공수처법까지 해서 문노스 장갑이 완성된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노스의 장갑이 완성되는 것을 막는 것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책무"라며 "결자해지를 위해 더불어민주당이 사과하는 게 첫 번째"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일베’ 사이트에는 ‘문노스의 권력’이라는 만화를 통해, “문 대통령이 ‘사법부스톤-입법부스톤-언레기스톤’에 이어 ‘공수처스톤’을 갖게 되면 대한민국 100년 집권이 가능하며, 임기가 끝나면 남한 중산층의 절반이 서민으로 전락할 것”이라는 저주성 글이 실려 있습니다.

문노스로 검색을 해도 일베 글이 주로 뜨네요. 나경원 대표는 정말 일베 애용자인 걸까요?
제1야당 대표로서 품위있는 언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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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대구 문화예술회관 앞에서 열린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대구경북지역 규탄대회에서 연설 도중 논란을 일으킬 발언을 했습니다.

나경원 원내대표

‘국민과의 대담’ 이후 논란이 된 송현정 기자에 대한 비판 여론을 두고 '문빠, 달창'의 공격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비하해서 부르는 ‘문빠(문재인 빠순이)’입니다. ‘달창’은 '문빠'를 더 강하게 모욕하기 위해 쓰는 표현입니다. ‘달빛기사단’이라 자칭하던 문재인 지지자 집단을 일간베스트 등 극우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달빛창녀단’이라 불렀고, 이를 줄여 쓴 표현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달창 뜻은 달(달=MOON=문재인대통령)에 창녀를 합성한 단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나경원 원내대표

아래는 오늘 나경원 원내대표의 발언 전문입니다. 여러분이 읽어 보시고 한 번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경원
민중의 소리 유튜브에서 발췌

정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자기네는 좌파 아니다. 독재 아니다." 이럽니다. 왜 좌파라는 말을 싫어하나요? 문재인 정권 우파입니까? 우파는 우리지 않습니까? 자유한국당. 그런데 자기네 좌파라고 하면 화냅니다. 소득주도성장, 현금 살포정책, 공무원 많이 뽑는 것도 좌파정책. 그런데도 왜 인정 안 하느냐? '좌파'하면 대한민국 미래가 없다는 것 자기들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러면서 화냅니다. 좌파라고 하면 화냅니다. 독재라고 하면 더 화냅니다. 촛볼정부인데 왜 독재냐고? 여러분, 자기만 옳다. 남은 틀리다. 이게 바로 독재 아닙니까? 여러분!

sbs 뉴스에서 보도
나경원 연설에서 비속어 등장

엊그저께 대담할 때 kbs기자가 물어봤는데 그 기자 요새 문빠, 달창 이런 사람들한테 공격 당하는거 아시죠? 아니 대통령한테 독재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지도 못합니까 여러분? 묻지도 못하는거, 이게 바로 독재 아닙니까? 여러분?

여러분 좌파독재 끝판왕이 뭐냐, 뭔지 아세요? 엊그저께 우리가 투쟁한 바로 패스트랙이 좌파 독재의 끝판왕이 아닙니까 여러분?


위와 같은 발언이 논란이 되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연설 과정에서 비속어를 사용한 데 대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나경원

그는 "저는 오늘 문 대통령의 극단적 지지자를 지칭하는 과정에서 그 정확한 의미와 표현의 구체적 유래를 전혀 모르고 특정 단어를 쓴 바 있다"며 "인터넷상 표현을 무심코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밝혔습니다.

자유한국당. 친문독재 결사항전?????
뭔가 어색....

알지도 못하는 단어를 써서 물을 엎질러 놓고 미안하다고 말만 하면 끝인가요? 제1야당의 원내대표의 수준도 참.... 알았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어 씁쓸하네요. 그리고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우파라고 말 좀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좌파일까요? 외국에서는 '좌파'라고 하면 통상 경제적으로는 사회민주적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정치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도가 되어야 좌파라고 해요. 우리나라 좌파 뜻 무엇?

나경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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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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