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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제주시에 있는 해산물 식당인 일통이반에 대해 소개하려고 합니다.
일통이반은 제주도에서 꽤나 유명한 식당 중 하나입니다. tv에도 몇 번 나온 곳이기도 해요.
저는 맛있어서 4번 방문했어요. 일통이반 사장님이 제주도 해남 1호이기도 하지요.

사장님이 직접 잡은 자연산 해산물을 (싸지는 않지만)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에요.
가봐야지 가봐야지 하다가 작년 2월에 처음 방문했고, 그 뒤로 세 번 더 방문했습니다.
(저는 항상 2명이 같이 갔어요. 2인 기준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글을 끝까지 읽어 보시면 가장 맛있는 조합을 아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일통이반의 메뉴판을 보시면 그날그날 가능한 메뉴가 다릅니다.

그냥 먹을 수 없는 메뉴에는 줄이 그여져 있음


사진처럼 그날 먹을 수 없는 메뉴에는 줄이 그여져 있어요.
처음에 방문했을 때는 성게를 먹을 수 없다고 해서 호랑소라에 왕보말죽을 먹었어요.

기본 반찬들과 왕보말죽

음식을 내어 주시면서 먹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미역, 톳무침, 무채, 배추를 한 숟가락에 올린 후 여기에 해산물을 올리고 참기름, 겨자 소스를 올려서 같이 먹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어요. 해산물만 먹으면 심심했을 수도 있는데, 맛을 풍성하게 해 준달까요?

먹는 방법을 친절히 알려 주시는데, 이대로 먹으면 바다의 풍미가 가득해 짐

그리고 왕보말죽도 고소하고 맛있었습니다. 이 때만 해도 만족도는 5점 만점에 3.5점 정도?

그리고 두 번째 방문. 이 때에도 성게가 없었어서 모둠해산물에 밥을 주문했어요.
모둠해산물은 문어, 돌멍게, 소라회로 구성됩니다.
역시나 먹는 방법을 알려 주시는데 이 날은 반찬 구성이 조금 바뀌었더군요.

모둠해산물 사진(돌멍게, 문어, 소라)

부추김치, 톳 무침, 양배추 절임, 단호박이었어요.

돌멍게(조금 짜다는 평이 있음)
문어
소라회(오독오독 하는 식감이 독특함)


역시나 조화로운 맛이 나긴 하더군요. 하지만 돌멍게가 너무 짜다고 하는 평이...

먹는 방법을 알려 주심


그래도 신선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어서 좋긴 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방문.
이 날은 드디어 성게알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성게알에 왕보말죽, 소라회를 먹었습니다.

왕보말죽과 성게알


성게알과 소라회를 먹는 방법은 같았습니다.
나온 반찬들에 해산물을 올리고 겨자, 참기름을 얹어서 먹는 것.

오늘도 친절히 먹는 방법을 알려주심. 반찬의 비결이 뭘까요?


역시나 바다의 풍미를 극대화 시키는 맛이었구요, 특히 성게가 맛있었어요.

그리고 또 하나의 끝판왕. 왕보말죽과 성게의 조합이지요. 

이렇게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맛!!
슥삭슥삭 비벼서 먹어야 맛있어요


왕보말죽에 성게를 얹어서 비벼 먹으면, 저와 친구 모두 "우와"하며 감탄을 했습니다.
이 날 만족도가 5점 만점에 5점이 되었어요.
그 전에 성게와 왕보말죽 조합을 몰랐던 것이 억울할 정도로요.

왕보말죽과 성게알의 조합에 쩌리가 되어버린 호랑소라회


그러면서 "우리 소라는 안 시켜도 됐을 뻔 했네."라고 이야기 했다는...
성게 2인분에 왕보말죽을 먹거나, 성게 1인분에 왕보말죽 2인분을 먹어도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5월 말에 네 번째 방문.
성게알, 왕보말죽, 돌멍게를 주문했습니다.
아버지랑 같이 갔는데 메뉴판을 보시더니 "와 엄청 비싸네."라고 하시더라구요.

오늘의 기본반찬. 갈 때 마다 반찬이 조금씩 달리지는데 해산물과의 조화는 좋아요

그러나, 이 집에서 먹는 방식대로 한 입 드셔 모시더니 맛있다는 반응.

오늘도 약간 짜다는 반응인 돌멍게

나중에 왕보말죽에 성게를 비벼 드시더니 더 맛있다는 반응이었어요.

성게알과 왕보말죽


하지만 돌멍게는 좀 실망이라고 하시더라구요.
역시나 다음에 오면 성게알과 왕보말죽만 먹어도 되겠다고 확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게알이 없다고 하면 방문하지 않아도 될 거라고 확신...

일통이반은 공항 근처에 있으니 꼭 맛 보시길 바랍니다.

제 나름대로의 일통이반 추천메뉴: 성게알, 왕보말죽(다른 메뉴는 이 둘에 비해 가격대비 만족도가 떨어질 수 있음.)
전화 해 보시고 성게알이 없다고 하면 방문을 다음으로 미뤄도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세 번째 방문에서야 성게알을 먹어봤는데 못 먹었으면 억울할 뻔 했어요.

제주 일통이반 영업시간: 둘째, 넷째 화요일만 휴무. 12:00~24:00

<영상> 제주 일통이반에서 맛있게 먹는 방법, 가장 맛있는 조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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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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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드라마 '보좌관 -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하 보좌관) 줄거리와 등장인물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보좌관 포스터

→방송: 6월 14일 첫 방송, 매주 금, 토 밤 11시
→보좌관 몇부작? 10부작(5주간 방송), 시즌제 드라마
→극본: 이대일( 라이프 온 마스, 싸우자 귀신아)
→연출: 곽정환( 미스함무라비, THE K2, 추노 등)


'보좌관'은 정치라는 전쟁의 중심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지금껏 조명되지 못했던 보좌관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려낼지 궁금하네요. 그 중에서도 권력의 정점을 향한 슈퍼 보좌관 장태준(이정재 배우)의 치열한 생존기를 그린 드라마입니다.

보좌관의 뜻
장태준(이정재 배우)와 송희섭(김갑수 배우)
보좌관들의 현실

또한 '보좌관'은 배우 이정재 씨의 10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기도 합니다. 이정재 씨는 지난 2009년 MBC ‘트리플’ 이후 10년 만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입니다. 이정재 씨는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이 작품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획이 재밌었고 시나리오가 재밌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보좌관 포스터 - 장태준을 덮고 있는 국회의원 금뱃지의 도금

'보좌관'은 시즌제 드라마로 시즌1은 10부작으로 5주간 방송됩니다. 보좌관 시즌2 제작도 확정된 상태입니다.

또한 '보좌관'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의 유료 가입 시청자들을 만나게 된다고 합니다. 방송 후 1시간 후에 넷플릭스에서 공개된다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보좌관의 등장인물들

<보좌관 인물소개, 등장인물 관계도>


이제 본격적으로 인물소개와 등장인물 관계도를 살펴 볼까요?
이 드라마는 장태준(이정재)과 강선영(신민아)를 중심으로 그들의 주변인물들이 등장인물입니다.

보좌관 인물관계도

장태준(이정재 배우) - 야망을 위해 질주하는 보좌관, 송희섭 의원실 수석 보좌관

송희섭의 수석보좌관 장태준

흙수저 출신으로 믿을 구석이라곤 자신의 머리뿐인 사람. 경찰대를 수석으로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했다. 난다 긴다 하던 경찰 간부들이 고작 도금된 6g의 배지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걸 목격하고 엘리트 경찰 간부의 꿈을 버림. 그날부로 경찰을 그만두고 국회로 들어감.

눈을 부릅뜨고 있네요 ㅎㅎ
심각하게 어딘가를 쳐다 보는 장태준


태준의 능력을 알아본 사람은 당시 비서관이었던 초선 의원 성민(정진영 배우)이었다. 성민의 발탁으로 보좌관이 된 태준. 야심만큼 그의 능력은 빛났다. 여러 의원실에서 러브콜이 끊이지 않았다.

과연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한 태준의 선택은 대한당 4선 의원 송희섭(김갑수 배우)이었다. 희섭의 수석보좌관이 된 태준은 희섭을 원내대표로 앉히며 신임을 얻는데 성공한다. 희섭이 차기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는 날, 태준은 그의 지역구 공천(지역구를 이어받기 위해)을 확답 받을 것이다.

‘국회의원 장태준’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비웃던 그 꿈이 현실이 되어간다.

강선영 국회의원


강선영(신민아 배우) - 유리천장에 도전하는 여성 정치인, 대한당 비례대표 초선 의원이자 당 대변인

강선영 의원


세련된 외모와 완벽한 능력을 갖춘 여성 변호사. 주변의 우려도 있었으나, 자신의 이름으로 방송사 간판 시사 프로그램을 론칭하기도 했다.

강선영 의원


주변의 우려가 무색하게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고, 정치 유력 인사들이 앞다투어 그녀의 프로그램에 출연하길 희망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많은 여성들이 선영을 자신의 워너비로 꼽았다. 바람대로 여당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은 선영. 초선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당 대변인까지 맡게 된다.

강선영 의원


의정 활동 4년 차로 내년에 있을 선거에서 재선을 꿈꾸고 있다. 비례 대표의 재선이 쉽지 않은 걸 안다. 그렇기에 지금껏 의정 활동에 목숨을 걸었다. 그러나 당내 원로이자 러닝메이트였던 조갑영 의원이 당 대변인 자리에서 그녀를 밀어내려 한다.

여기서 물러설 수 없다.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 두 주인공이 연인 관계로 나오는군요.
정치하느라 바쁜 와중에 정치하며 연애도 하는 ㅋㅋㅋㅋ

윤혜원(이엘리야 배우) 보좌관

윤혜원(이엘리야 배우) - 차갑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의 보좌진, 송희섭 의원실 6급 비서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생각하는 사람. 기자 출신으로 태준(이정재 배우)의 권유로 보좌진 일을 시작함.
수습 기자 시절의 상처를 마주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태준의 말에 혜원은 망설임 없이 일에 뛰어들었다.

윤혜원 보좌관


부단히 노력했고 치열하게 살았다. 인생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일에 몰두하는 그녀에겐 오히려 휴일이 어색했다.

윤혜원 보좌관


80%가 남자인 보좌관 세계에서 뚝심 하나로 6급 비서까지 올라왔다. 실력이 도도함으로, 당당함이 때론 건방짐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모든 건 치열한 보좌진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보호막이자 자신의 여린 마음을 감추기 위함이다. 그녀 주위엔 언제 끊어질지 모를 활시위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장태준(이정재)을 동경하는 인턴 한도경

한도경(김동준 배우, 제국의 아이들 출신) - 호기롭게 세상에 덤벼드는 멋모르는 인턴, 송희섭 의원실 인턴

국회 인턴 면접을 보러 온 한도경

어리바리해 보이지만 총기 있는 눈빛. 소심하지만 할 말은 할 줄 아는 강단. 꿈을 잃은 시대, 대통령을 꿈꾸는 철부지다.

한도경 인턴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웃음을 잃지 않고 주변에 밝은 에너지를 전달한다. 사랑 받으며 자랐을 것 같은 도경도 나름 힘든 삶을 살아왔다.

한도경 인턴


공무원이 되길 바라는 엄마의 바람과는 반대로 조만간 있을 국회의원 보좌진 면접 준비로 바쁘다. 매번 의원실 인턴 채용에 지원했지만 떨어졌다.

커피차 앞에서 포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면접을 보러 간 도경, 그런데 면접날부터 도경이 롤모델로 삼던 수석보좌관 장태준(이정재 배우)의 눈 밖에 났다. 합격은 물 건너갔다 생각했는데 이거 웬걸? 합격이다. 태준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아무리 힘들어도 달릴 것이다.

이성민 의원(정진영 배우)


이성민(정진영 배우) - 가지고 싶은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정치인, 태준의 고향인 성진시 진구 무소속 초선 의원

정의감은 넘치지만 권력에 욕심이 없다.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을 좋게 만들고 싶을 뿐이었다. 해야 할 말은 망설임 없이 하고, 쉬이 물러서지 않는다. 당 없이 홀로 모든 걸 감내하다 보니 인생이 복잡해졌다. 시민단체에 소송이 걸리고 윤리 위원회에 회부되는 일은 수시로 일어났다. 다혈질적인 성격과 융통성 없는 성격의 소유자.

무소속 이성민 의원(뭔가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생각나는 행색?)

정치를 하면서 그가 무서워하는 것은 사랑스러운 아내와 딸뿐이다. 밖에선 한 성질 머리하지만 가족 앞에선 순박한 머슴. 꿈과 이상을 위해 행동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기에, 조금 한심해 보여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따뜻한 마음으로 가득 찬 푸근한 아저씨다.

고된 의원 생활에 힘에 부칠 때마다 자신을 이해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태준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 싶다고 칭얼댄다. 자신을 떠나 희섭에게 간 태준을 원망하지 않는다.

송희섭 의원(김갑수 배우)


송희섭(김갑수 배우) - 부끄러움을 모르는 탐욕스러운 정치인, 대한당 원내대표 4선 국회의원

높은 놈에겐 바짝 엎드리고, 줄 놈에겐 빤스까지 벗어주고 죽일 놈은 철저히 짓밟아 버리면서 살아왔다. 온갖 비리와 불법으로 점철된 그의 삶이 지금의 희섭을 만들었다.

주요 요직을 섭렵했지만, 노련하다기보단 비열하고 저열하다는 표현이 걸맞다. 차기 공천권을 쥐고 있는 희섭에게 모두가 굽신거린다. 국회 밥 대신, 희섭은 청와대에서 칠순잔치(대통령)를 꿈꾼다.

송희섭 의원

그 꿈을 위한 첫 단계가 장관이다. 그래서 험난한 자갈밭을 앞에서 헤쳐 줄 태준이 필요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보다 태준의 능력을 높이 사면서, 의원인 자신보다 태준이 빛이 나자 희섭의 눈매는 점점 사나워진다.

 

오원식 보좌관(정웅인 배우)

오원식(정웅인 배우) - 돈이 신념이 되어 버린 야비한 보좌관, 송희섭 의원실 지역구 보좌관

정치적 신념 따위 없이 오직 돈 만을 쫓는 인물.

희섭의 지역구의 도시계획과 공무원 출신. 기업과 정부 기관의 과실과 비리를 찾아다니며, 무마 조건으로 뒷거래하고 술과 유흥을 접대받는 게 일상이다.

오원식 보좌관(송희섭 의원실)

자신도 여러 번 비리에 적발되었지만 특유의 능글맞은 처신으로 무마시켜왔다. 상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어떤 일도 서슴치 않는 의전의 대가다.

송희섭의 지역구를 도맡아 관리하면서, 희섭의 온갖 더러운 일을 처리해 왔다. 희섭의 신망을 얻어 지역구를 물려받을 생각이었지만, 희섭이 태준을 데려오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하지만 그는 꽉 잡은 지역을 순순히 내어줄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다.

 

고석만 보좌관(강선영 의원실)

고석만(임원희 배우) - 곰살 맞고 오지랖 넒은 보좌관, 강선영 의원실 수석보좌관

태준과 보좌진 인턴 생활을 함께했다. 태준과는 서로를 잘 이해하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다. 사람들과 격이 없고 소탈한 성격.

과거, 얼마 없는 돈에 대출까지 받아 시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경험이 있다. 같은 해 아들까지 태어나며 불어난 빚을 메꾸기 위해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선영의 의원실에 들어갔다.

고석만 보좌관(강선영 의원실)


유연하고 부드러운 성격에 동료들의 고민 상담을 해주는 등 인간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한번 화가 나면 예전의 성미가 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태준에게 허물없이 막말하는 사람 중 하나다.


아래는 주인공 8인의 개별 포스터 모음입니다. 각각의 캐릭터가 보이시나요?

8인의 포스터

어제(6월 13일)는 제작발표회도 있었습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 했는데요, 곽정환 감독은 시즌제라 부담스러운 면도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제작발표회 단체샷
곽정환 PD

또한 6월 15일 토요일 밤 9시에는 아는형님에 임원희, 이엘리아, 김동준 배우가 출연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보좌관의 OST 라인업도 공개되고 있는데요, 엑소의 첸과 워너원 출신인 김재환 씨가 OST에 참여했다고 하네요. 

보좌관 OST
보좌관 OST는 6월 14일 6시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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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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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별세하셨습니다.
김대중평화센터는 "이희호 여사가 오늘 오후 11시37분 소천했다."고 밝혔습니다. 향년 97세.

이희호 여사는 그동안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노환으로 입원해 계셨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의 임종은 차남 김홍업, 삼남 김홍걸 씨를 비롯한 가족들이 지켰다고 합니다.

엄혹한 시절 이희호 여사와 김대중 대통령 부부를 생사의 기로에 서게 했던 사람은 아직도 정정한데
피해를 입은 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나시는 걸 보면 야속한 마음도 드는군요.

북유럽 순방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이희호 여사님의 소천 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셨네요.
글을 읽는데 그 마음이 와 닿아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군요.

문재인 대통령의 추모 글

또한 DJ(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인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글을 남겼습니다.

가족들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려고 입을 움직이시면서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합니다.
빈소 준비관계로 내일 11일 오후 2시 부터 조문이 시작되며, 이희호 여사의 발인은 14일 금요일이라고 합니다.

박지원 의원의 페이스북 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은 이희호 여사에 대한 글을 써 보려고 합니다.

이희호 여사는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 대통령의 영부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부인 중 최장수한 영부인이라고 합니다.

제15대 대통령 취임식 때

이희호 여사는 1922년생으로 이희호 여사의 고향은 서울.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습니다.

뒷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희호 여사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식을 일깨웠던 감리교(기독교) 집안의 두 남녀가 만나 결혼했고,
그들이 이희호 여사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의사였고, 어머니는 집안일을 했습니다.

학교에 못 다닌 게 한이었던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여자도 공부해야 해”라며 이희호 여사를 다독였다고 합니다.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왼쪽이 이희호 여사)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 이화여고), 이화여자전문학교(현 이화여대) 문과를 졸업(일제로 인해 2년만에 강제졸업)했습니다.

이화여고 시절(맨 오른쪽)

해방 직후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서 서울대 사범대 영어과에 입학하여 대학 공부를 다시 시작합니다.

서울대 사범대 시절 이희호 여사

이후 3학년 때 서울대 교육학과로 전과하여 졸업하게 됩니다.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동기들과 함께

서울대 졸업 후 미국 램버스 대학 사회학, 미국 스카릿 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이희호 여사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 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 등의 단체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정치인 반대 운동, 혼인신고 하기 등의 여성운동과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쳐 일했습니다.

여성지도자로서 최루탄 추방대회에 참가한 이희호 여사

특히 여성 문제, 아이들과 노인, 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인권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 결과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합 ‘1984년도 인권상’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올해의 탁월한 여성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수상했습니다.

2008년 발간 된 이희호 여사의 회고록 '동행'을 읽어보면

이희호 여사 자서전 동행

소녀 시절에는 "희희호호 웃는 이희호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재기 발랄한 소녀였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 일 하는 여성리더를 꿈 꿔 왔습니다.

그러던 중 1951년 부산 피난 시절, 30세에 평생의 동반자 김대중(당시 28세)이라는 청년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됩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인 차용애 여사가 1959년에 병으로 별세하게 되었고,
아무런 연락 없이 지내던 두 사람은 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1961년 늦가을부터 자연스럽게 만남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962년 5월 10일, 서울 종로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이희호 여사 41세, 김대중 대통령 39세) 당시 이희호 여사의 집안과 주변에는 반대가 극심했으나, 청년 김대중의 성실성, 신념, 관용, 멋에 이끌렸으며, 내가 도와야 할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혼식 때 가족들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

"나는, 그의 의지와, 신념과, 관용과, 멋스러움을 사랑하고, 특히 남녘 땅 그의 고향 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그 활짝 웃는 모습을 몹시 사랑하지만, 그 보다도, 내가 그의 동역자로서 나의 인생을 그에게 아낌없이 바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조국을 사랑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사랑, 우리의 사랑은 곧 조국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희호 여사는 서울대를 나온 최고 엘리트였으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고졸에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낭인으로 지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듭되는 국회의원 선거 낙선, 1961년 선거에서는 당선되었으나 5.16으로 인해 감옥에 가야했던 꿈 많은 젊은 정치가일 뿐이었습니다.

가족사진(아기는 김홍걸, 맨 오른쪽은 김홍일)

게다가 이희호 여사는 초혼(당시 계훈제 라는 분과 결혼할 뻔 했으나 하지 않았음)이었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부인과의 사별로 중학생이던 두 아들(김홍일, 김홍업)도 기르고 있었으며,
홀어머니와 심장병에 걸린 시누이도 모셔야 했기에 주변 사람들의 반대도 이상한 일이 아니겠지요.
결혼 후 두 사람은 3남인 김홍걸 씨를 얻게 되었습니다.

80년대 동교동 문패(김대중, 이희호, 김홍일)

이희호-김대중 부부는 남자가 집안의 주인이라고 생각되던 시절부터 집 앞에 부부의 이름을 문패로 나란히 붙였습니다.
서로를 존중했던 부부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00년대에도 이어진 부부의 나란한 문패

 

1963년 목포에서 국회의원에 당선 된 후 당선사례(이희호 여사는 당시 김홍걸 씨 출산 2주 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이희호 여사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오게 만들어 버립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 인생은 망명, 납치, 구금, 연금의 연속이었고, 이로 인해 남편을 위한 석방 투쟁과 정치활동, 가장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장에서 음료를 건네는 이희호 여사
1976년 김대중 석방운동 중인 이희호여사, 김홍일 전 의원

심지어 1980년에는 남편인 김대중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그 시절 미국 백악관에 직접 구명요청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사형선고
김내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김대중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극적으로 석방되었고, 오랜 기간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1982년 미국 망명 당시
미국 망명 당시 김대중, 이희호 부부와 세 아들


이러한 시련들은 두 사람을 부부애를 넘어선 동지로서 살게 했습니다.

1985년 미국 망명 후 귀국해서
1987년 6월 항쟁 승리 후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며 눈물 흘리는 김대중
자유의 몸이 된 후 아버지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던 두 사람이 뒤 늦게 분향을 하고 있는 사진

김대중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에서 거듭 낙선(71년, 87년, 92년)을 경험하였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에도 하느님은 나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 이제 정계를 떠나려고 하오.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써주오."
구술을 받아 쓰다가 눈물 흘리는 이희호 여사의 손을 잡고 김대중 대통령은 "여보, 우리 1980년 사형선고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웃을 일 아니오."라고 서로를 다독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92년 대선 패배 뒤 정계은퇴 기사

하지만 1996년 다시 정계 복귀를 선언 하였고,
마침내 1997년, 김대중 대통령은 15대 대통령에 당선(당시 이희호 여사 76세, 김대중 대통령 74세)되었고, 두 사람은 청와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96년 정계복귀 선언 관련 기사
네 번의 도전 끝에 대통령 당선
1998년 2월, 대통령 취임식에서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내 한 몸 바치겠다는 큰 꿈과 열정이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그는 늘 책을 읽고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그랬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나는 이 비범한 남자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름 평안한 노후를 보내시던 두 분에게 시련이 닥쳤는데 2009년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 몸의 반이 무너진 심정"이라고 표현하시기도 했는데요,
그 이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2009년에 김대중 대통령도 서거하시게 됩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이런 편지를 쓰셨다고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 관에 함께 넣은 이희호 여사의 편지

"사랑하는 당신에게.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여러 활동을 해 오셨습니다.

그러나 최근 노환으로 병세가 급격히 나빠지셨다고 합니다.

2018년 10월 손학규 대표 방문 때

다시 살펴보니 김대중 대통령도 그렇지만 이희호 여사도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정신적 동지이자 삶의 동반자가 없었다면 과연 김대중이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2011년 김대중 광장 방문
가족들과 함께


두 분이 다시 만나신다면 아픔은 잊고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남 고 김홍일 전 의원의 이야기를 읽으시려면 아래 글을 클릭해 주세요.

2019/04/20 - [정치사회 뉴스] - 김홍일 전 의원 별세

 

김홍일 전 의원 별세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오후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80년대에 독재를 일삼으며 많은 사람들을 죽였던 사람도 90이 넘어서도 건강하게 사는데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받은 고문 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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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선우선씨가 다음달인 7월 14일 서울 뉴힐탑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합니다.

선우선 씨의 나이는 1975년생, 우리나이로 45세인데 엄청난 동안으로 알려진 배우이기도 하지요.


결혼 상대는 무술감독이자 액션배우로 활동 중인 이수민 씨라고 합니다.
이수민 씨의 나이는 1986년생 34살로 선우선 씨와는 11살 차이네요.

이수민 씨는 2015년 ebs 액션체험 땀 '액션배우 편'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두 사람은 작년 영화 촬영을 하면서 동료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해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선우선 씨는 처음에는 1980년생으로 알려졌지만, 나중에 실제 나이는 1975년생이라고 밝혀 화제가 된 바 있죠.

또한 155cm의 키가 믿어지지 않는 비율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 웨딩 화보 촬영을 마치고 지인들에게 결혼 소식을 전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수민 씨 인스타그램 사진

2017년에는 소속사인 광윤 인터내셔널 대표 조상민씨와 열애설이 나서 조 대표가 직접 사실무근이라고 한 바가 있습니다.
2017년에 Olive TV '어느날 갑자기 백만원'에 함께 출연해 다정한 모습을 과시했었는데요, 당시 워낙 친하게 지내다 보니 오해를 불러 일으킨 것 같다고 하였었지요.

전 소속사 대표 조상민 씨

당시 선우선 씨는 "때 되면 가야 된다는 결혼에 대한 고정 관념이 없어졌으면 한다"라며 "따뜻하고 배려심이 깊은 사람이 좋다. 연예인으로는 조인성 씨랑 강동원 씨를 좋아한다"라고 이성관을 밝히기도 했었습니다.

선우선 씨의 소속사는 토미상회로 신성우, 최여진, 전효성, 정경호 씨 등이 소속되어 있기도 합니다.

선우선 씨는 2003년 영화 조폭마누라에서 중국 조직원(단역)으로 데뷔하였으며,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서 주연을 맡으면서 입니다.

이후 영화 달콤, 살벌한 여인, 마이 뉴 파트너, 거북이 달린다, 전우치, 평양성 등에서 차근히 필모그래피를 쌓아 왔습니다.

평양성
거북이 달린다
영화 촬영 중

선우선 씨는 15년 째 12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캣맘이기도 한데요,
tv 동물농장과 나혼자 산다에 출연해서 일상을 보여주기도 하였지요.

나 혼자 산다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하는 선우선 씨의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여서 아직도 기억에 남네요.
당시 고양이들 세수만 1시간 30분 동안 이어졌고, 고양이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상을 보여주었지요.

집 역시도 원래는 가족을 위해 마련한 집이지만 고양이들로 인해 분가해서 혼자 살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작년에는 고양이들과 가족이 되어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영화로 찍어서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습니다.

작품 제목은 '오늘도 위위'입니다. 보신 분들의 평에 의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잔잔한 영화라고 하네요.

새로운 출발을 하시는 선우선 씨의 앞 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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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한선교 사무총장(지역구 경기 용인시 병)은 오늘 황교안 대표의 백브리핑(백브리핑 뜻: 백그라운드 브리핑, 회의가 끝난 뒤 진행되는 비공식 브리핑)을 듣기 위해 바닥에 앉아 있는 기자들을 향해 "걸레질을 한다"고 발언해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한선교 사무총장은 3일 한국당 최고위원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회의실 앞 바닥에 앉아있는 출입기자들을 향해 "아주 걸레질을 하는구먼, 걸레질을 해"라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이 바닥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황교안 대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서 질문하기 위해 엉덩이를 바닥에 대고 앉은채로 이동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기자들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걸레질'에 비유한 것이지요. 당연히 이 말을 들은 기자들은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백브리핑 하는 기자들의 모습

백브리핑은 회의장 밖에서 대기를 한 뒤, 취재원(황교안 대표)이 나오면 질문을 하곤 합니다. 이 과정에서 노트북에 발언을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바닥에 앉아 질문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형태로 기사를 쳐야 하는 것이지요.

백브리핑 하는 기자들의 보습

 

논란이 불거지자 한선교 사무총장은 "(기자들이) 바닥에 앉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자리를 앞으로 가려고 엉덩이로 밀고 가니까 보기 좋지 않아서 그렇게 (발언)했다"고 해명했습니다


한선교 사무총장은 5월 7일 자유한국당 사무처 직원들에게 심한 욕설(X같은 XX야, X발 꺼져!)을 하는 등 막말 논란이 한 차례 불거졌었지요. 당시 한 사무총장은 "사무처 당직자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혀 일단락 되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 번 막말 논란, 그것도 기자들을 향해 막말을 해서 일이 커질 수도 있겠네요.

또한 2016년 10월 13일 국정감사에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성희롱 논란'을 빚은 바 있습니다.

한선교: 왜 웃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
유은혜: 사과하세요.
한선교: 선배로서 좋아하냐고 물은 것이다. 동료 의원이 저를 보고 비웃듯 웃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있겠냐?

그러나 이 발언이 성희롱이라는 비판이 잇따르자 한선교 사무총장은 "저로 인해 교문위 회의에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드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개인적으로 유 의원이 학교 후배라 긴장감을 놓친 것 같다"고 변명하기도 했었습니다.

유은혜 교육부장관

한국당의 막말 퍼레이드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나경원 대표의 달창 발언, 김현아 의원의 한센병 발언, 정용기 정책위의장의 "김정은 위원장이 지도자로서 문재인 대통령보다 더 나은 면도 있는 것 같다"발언, 민경욱 대변인의 '골든타임 3분' 발언 등 셀 수 없이 많은 지경이네요.

2019/05/11 - [정치사회 뉴스] - 나경원 문노스 달창 뜻 자한당 막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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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7 - [정치사회 뉴스] - 한센병 막말 김현아 프로필 지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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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욱 대변인의 경우 지난 1일 헝가리 유람선 참사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을에 "일반인들이 차가운 강물 속에 빠졌을 때 골든타임은 기껏해야 3분"이라고 언급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세월호 구조대를 지구 반 바퀴 떨어진 헝가리로 보내면서 '중요한 건 속도'라고 했다"고 언급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지구 반대 편에 있든, 한국에 있든 중요한게 속도가 아니면 무엇일까요? 헝가리에 있으면 천천히 일을 진행해도 되는 것일까요?

 

황교안 대표는 이날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막말 논란과 관련 "저희 당은 사실에 근거한 정당, 사실을 말하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노력 하겠다. 그 과정에 혹시라도 국민 심려를 드리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비공개 회의에서는 “저도 제 발언이 당의 이미지로 굳어질 수 있다는 염려에 항상 삼사일언(三思一言), 즉 세 번 생각하고 한 가지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 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러한 말을 한 직후 바로 '걸레질' 발언이 터지게 되었네요.

심기가 복잡한 자유한국당

이러한 막말 발언에 대해 각 당의 성토가 이어졌는데요, 김정현 평화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한 사무총장이 취재기자들을 향해 '걸레질한다'고 한 것은 그간 그의 막말행적을 볼 때 고치기 힘든 습관성 고질병"이라고 비판하였습니다.

김정현 평화당 대변인

한선교 의원은 MBC 아나운서 출신인데요, 아나운서 시절에는 참 이미지가 좋은 아나운서였지요.

 

지금은 인상이 좀 변했는지 인터넷에 한선교 얼굴변화라는 글도 있을 정도입니다. 저도 한 번 정리를 해 보았습니다.

90년대
2006년

 

2010년

 

2014년

2018년

 

2019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제발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하는 발언의 무게를 느끼고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마무리 해야겠네요.

 

문재인 정권이 예쁜 아나운서(배현진)를 민주 투사로 만들었다??
'친박연대'로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시절

아래는 한선교 의원의 프로필입니다.

1959년, 61세
한선교 고향 서울 출생

한선교 의원의 부인은 MBC PD 출신의 하지현씨이며, 자녀는 딸 두 명이 있습니다.


학력
-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 문학 석사
~ 2007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석사
~ 1985 성균관대학교 물리학 학사
~ 1977 대일고등학교 졸업

경력
2019.3 자유한국당 사무총장
2016.5 제20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12.5 ~ 2016.5 제19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11.6 ~ 2014 제7대 한국농구연맹 총재
2008.5 ~ 2012.5 제18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07 한나라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 경선캠프 대변인, 수행단장
2004.5 ~ 2008.3 제17대 국회의원(경기 용인시 병)
2004.3 한나라당 대변인
1999 서울방송 한선교 정은아의 좋은 아침 공동진행
1984 ~ 1995.4 문화방송(MBC) 편성국 아나운서팀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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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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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이정은 선수(25세, 대방건설)가 제74회 US여자오픈 대회에서 최종합계 6언더파 278타로 우승했습니다. 생애 첫 LPGA투어 우승을 메이저대회 우승으로 시작했네요.

이번 대회에서 상금 100만달러(약 12억원)를 받은 이정은 선수는 상금 순위 1위, 롤렉스 루이스 서그스 올해의 선수 부문 1위, 그리고 4일자로 발표될 롤렉스 세계 랭킹에서 12계단 오른 5위에 랭크될 예정입니다. 이번 시즌 이정은 선수의 누적 상금은 135만3천836달러(약 16억원)입니다.

제74회 US여자오픈 대회의 준우승도 한국의 유소연(메디힐) 선수입니다. 이정은 선수와의 타수는 2타 차이였습니다. 유소연 선수는 "동료 선수이자 같은 나라 골퍼로서 이정은6의 우승이 자랑스럽다."고 밝혔습니다.

골프 대회는 보통 4일간, 4라운드까지 진행되는데요, 이정은 선수는 3라운드 까지는 1등에 2타 뒤진 2위였습니다. 4라운드 1번 홀에서 보기(+1타가 되는 것)를 범해서 부담이 될 수 있었지만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정은 선수는 "1번홀에서 보기를 했을 때 마무리가 좋았던 기억이 많았다. 오히려 1번홀 보기가 도움이 됐던 것 같다"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유소연의 축하를 받는 이정은

이정은 선수는 우승 트로피를 받고 눈물을 흘렸었는데요, 통역을 하던 이정은선수의 통역이자 매니저인 제니퍼 김 씨도 같이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잊어은 선수는 "지금까지 우승했던 어떤 대회들보다 느낌이 다르다. 그동안 골프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나서 눈물이 났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통역 제니퍼 김과 이정은6 선수

이정은 선수의 아버지 이정호 씨는 이정은 선수가 4살 때 트럭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셨다고 합니다.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골프를 배워 세미 프로 자격이라도 따면 레슨코치를 해도 먹고살 수 있다는 말에 골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크게 되어 LPGA 메이저 대회 우승까지 하는 기염을 토하게 되었네요.

가족과 함께 2016 klpga 대상 시상식

그는 "어릴 때 집안이 어려워 도움을 주신 분이 많다. 그분들도 여유가 없었는데 나를 도와주셨다. 나도 그분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운동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우승

이정은 선수의 고향은 전남 순천입니다. 이정은 선수의 나이는 1996년생, 한국 나이로 25살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3년 동안 골프를 배운 적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골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골프 특기생으로 진학할 성적이 없어서 일반 학생으로 고등학교에서 골프와 학업을 병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국가대표 상비군이 되었고, 고3때인 다음해에는 호심배 우승을 하면서 국가대표가 되었습니다. 이후 이정은 선수는 대학에 진학했는데요, 한국체대에 특기생으로 진학하여 실력을 계속 뽐내 왔습니다.

klpga 대회 첫우승 때

이정은 선수의 아버지는 이정은 선수의 장애인용 승합차를 직접 몰며 이정은 선수의 운전기사 역할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2017년 이정원 선수는 "올해부터는 아버지를 놓아드리기로 했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장애인 탁구선수의 아버지가 선수 활동을 자신으로 인해 제대로 하지 못 하시는 것을 걱정하여 놓아드린 것입니다.

장애인 탁구선수인 이정은 선수의 아버지 이정호씨

KLPGA(한국여자프로골프)에 데뷔한 이정은 선수는 2016년 신인왕, 2017년에는 한국 여자골프 최초로 전관왕(6관왕)을 차지하면서 국내 무대를 평정했습니다. 2018년에도 국내 메이저 대회 우승, 상금왕, 최저타수왕을 차지했습니다. 이정은 선수의 아버지는 휠체어를 타고 딸의 경기를 따라 다니며 응원하셨습니다.

이정은 선수를 응원하는 가족들

국내에서 더 이상 올라설 곳이 없던 이정은 선수는 2018년 LPGA 투어 퀄리파잉 스쿨(Q스쿨)에 도전하여 1위를 차지하며 LPGA 투어 출전 자격을 얻었습니다. 이후 아버지를 생각해서 미국 진출을 고민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으로 진출하면 가족을 돌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진출 시에도 가족이 동반하지 못했고, 통역과 함께 미국 투어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2017년 국내대회에서


"6이라는 숫자는 럭키 넘버 같다."

여기서 핫식스 이정은, 또는 이정은6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계시지요? 핫식스는 이정은 선수의 별명입니다.

klpga 홈페이지에서 이정은6로 등록된 이정은 선수

이정은 선수는 KLPGA 투어에 동명이인 선배 이정은이 5명 있어 '이정은6(LEE6)'로 등록된 상태입니다. 지난 1998년 6월 입회한 1976년생 이정은 선수는 시작으로 1987년생 이정은 선수까지 이정은4로 등록됐고, 현역으로 활동 중인 1988년생 이정은 선수는 ‘5’, 그리고 이번에 우승을 차지한 막내 이정은 선수가 이정은6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KLPGA에는 이정은A, 이정은B까지 있어 총 8명의 동명이인이 등록된 상태라고 합니다.

LPGA는 홈페이지에서 그의 영문 이름(Jeongeun Lee6)을 줄여 ‘Lee6'라고 표기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US오픈 우승컵을 안고

 

US 오픈 우승컵을 들고

 

강소라 배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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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발탁 된 김외숙 변호사의 프로필과 이력, 그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대한변협 회지에 기고한 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외숙 법제처장을 신임 청와대 인사수석으로 임명했습니다. 김외숙 변호사는 법무법인 부산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평생 소외 계층의 권리를 위해 싸워 온 인권변호사입니다.

김외숙 인사수석의 고향은 경북 포항입니다. 1989년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1992년부터 문재인 대통령과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설립한 법무법인 부산(이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를 하게 되면서 법무법인 부산을 설립)에서는 1995년부터 소속변호사로 활동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고 나서도 줄곧 법무법인 부산을 지켜왔습니다.

법무법인 부산 설립 시절, 왼쪽에서 세번째가 문재인 대통령, 다섯번째가 김외숙 수석

김외숙 변호사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인권변호사로 훌륭한 역할모델이었던 문 변호사 때문”이라고 밝힌 적도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같이 일을 하는 내내 본 모습으로 말씀 드리면 한결같은 사람이다. 처음과 끝, 안과 밖이 같은 사람이다”라며 “처음에는 근사해 보여도 같은 공간에서 오랜 시간 일을 하고 속속 들이 알게 되면 단점도, 눈에 거슬리는 점도 나타나게 마련이지 않나. 하지만 문 변호사님은 그런 게 전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법무법인 부산 야유회


당시 김외숙 변호사는 변호사 등록을 할 사무실을 여러군데 알아 보았는데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알게 되고, 그에 대한 평판도 듣게 되면서 문재인 변호사에게 함께 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부산에서 변호사 등록할 때 알아보니 당시 전국에 여자 변호사가 21명이었다. 그 중 19명이 서울에 있고, 나 빼고 부산에서 대학을 나오신 한 분이 부산에서 일하고 계셨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부산에서 일한 여성 변호사 2명 중 1명이었던 셈이다.(부산 2호 여성변호사)

이름이 다 남자 이름이지요? 아는 이름들이 많네요.

김외숙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노동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니까 반가워하신 것 같다”며 “이런저런 내 생각을 말씀 드리니 흔쾌히 같이 하자고 하셨다”고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근무 시절인 2003년 2월∼2008년 2월 법무법인 부산을 탈퇴했고, 청와대 근무를 마친 2008년 9월 다시 합류하여 대선에 출마하기 전엔 2012년까지 대표 변호사로 있었습니다.

청와대는 김외숙 수석의 발탁 배경을 "균형있는 인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균형감있는 시선, 따뜻한 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부분에 있어 노동인권 변호사로서의 역할, 법제처장으로서의 성공적인 업무 수행이 앞으로 균형적 인사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외숙 인사수석의 가족으로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67년 경북 포항
▲포항여고, 서울대 사법학과
▲미국 버지니아대 로스쿨
▲법무법인 부산 변호사
▲한국여성변호사회 부회장
▲부산지방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법제처장(문재인 정부 초대 법제처장)

아래 글은 2012년, 김외숙 변호사가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대한변협 회지에 기고한 글입니다.
당시 M변호사라고 썼으나,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것은 나중에 밝혀지기도 했었지요. 한번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신사의 품격'
김외숙 변호사

우연히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돌리던 채널을 아는 얼굴이 나오는 곳에 잠시 멈추었더니 요즘 한창 인기가 좋다는 ‘신사의 품격’이었다.
중간에 잠깐 한번 본 것으로 그 드라마를 마치 잘 아는 양 나대고 싶진 않다.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고 해야겠다. 거기에는 나이 마흔을 넘긴, 매끄럽고 세련된 남자 4명이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수려한 외모, 폼나는 직업, 멋진 차림새는 남자의 로망을 망라한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어디 인생이 그렇게 매끈하고 화려하기만 한가?’ 이죽거렸다. 현실이 그게 아닌데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것에 그만 심사가 꼬였던 것이다.
얼마 안 가 주인공들이 스스로를 신사가 되지 못한 소년이라 부르며 맥주잔을 맞부딪치는 장면이 있었다. ‘그래. 아무나 신사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긴 아는구나.’ 그제야 불편했던 심기가 풀리며 드라마가 보였다.
모름지기 누군가를 신사라고 할 때는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품격을 보는 것이다. 소위 꽃중년 신드롬에서는 신사의 품격을 느낄 수 없다. 부산에는 진짜 신사들이 아주 많은데 그분들 전부를 소개하기에는 안타깝게도 지면이 너무 좁다. 하지만 기회가 허락하는 대로 부산 법조계의 멋진 신사들을 소개하고 싶다.

신사 M: 인간에 대한 예의
내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부산에 와서 변호사를 시작하게 된 건 순전히 M변호사 때문이었다. 1990년대 초반, 부산·경남지역에서 노동, 인권사건은 M변호사가 도맡고 있었다. 혼자 잘먹고 잘살기 위해 고시공부를 한 건 아니라고, 나름대로 정의감에 충만해 있던 예비 법조인들에게 그는 훌륭한 역할 모델로 이름나 있었다. 노동변호사가 되고 싶다며 불쑥 찾아간 나를, 그는 흔쾌히 맞아 주었다. 체력이 약해 비실거리지나 않을지, 출산이나 육아로 업무에 지장을 주진 않을지 등등 여자라서 일시키기에 불편할까 따지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때까지 사회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던 나는 M변호사의 그런 태도가 누구에게서나 볼 수 있는 당연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변호사를 시작하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나는 사람에 대해 그런 태도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서히 알아갔다. 나만 해도 변호사로서 조금 꾀가 나기 시작하자 사람을 가려 판단하고, 지레 선입견으로 말을 자르고, 유불리를 따졌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변호사의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지혜라 여겼다.


하지만 M변호사는 달랐다. 내가 보기엔 반복되는 쓸데없는 이야기, 순전히 억지뿐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당사자에게도 그는 그렇게밖에 못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먼저 읽을 줄 알았다. 그래서인지 가족들에게서도 외면당한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절망에 빠져 죽음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그를 찾았다. 돈 받고 남의 일 해주는 변호사지만 그렇게 신뢰와 의지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를 통해 보았다.


수년 전의 일이다. 우리 사무실에는 아주 질기고 질긴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건이 그렇게 되는 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사건 본래의 성격이 그렇거나, 아니면 당사자가 독특하거나. 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사건이었고 당연히 M변호사를 보고 찾아온 의뢰인이었다.

그녀는 도무지 청구취지에 담길 수 없는 내용을 주문했고, 한 가지를 설득시키고 나면 다른 요구사항을 들고 나오는 식이었다. 그녀의 주치의들과 법원 근처의 웬만한 법률사무소들도 이미 두 손을 든 상태였다. 그녀는 때를 가리지 않고 찾아왔고, 불쑥 나타나 오랜 면담으로 업무를 중단시키고도 돌아서면 다시 할 말이 생각나는지 전화로 M변호사와의 통화를 요구했다. 직원들은 그녀의 성화에 전화를 바꿔주지 않을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M변호사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M변호사는 그 흔한 “법정 갔다고 그래”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가끔 얼굴을 찌푸리며 담배를 찾을지언정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호소를 끈덕지게 듣고 있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스러운 상황에서조차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잃지 않았다.
결국에는 M변호사의 한결같은 태도가 세상에 모든 원통한 일을 혼자 당한 듯이 응어리진 그녀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녀뿐만 아니라 우리 사무실 식구들까지도 스스로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였다.
신사의 품격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데 있고 그 예의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에서 나오는 것임을 오늘도 되새긴다.

법제처장 임명장 수여
법제처장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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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바닷마을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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